야구
[마이데일리 = 고척돔 김진성 기자] 점점 더 위력을 더하는 '라스트 댄스'다.
ESPN이 지난 봄에 공개한 '라스트 댄스'는 세계 스포츠 팬들을 열광시켰다. 미국프로농구 시카고 불스의 마지막 전성기였던 1997~1998시즌을 다룬 다큐멘터리.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과 불스의 스토리가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2020년 가을. 어쩌면 KBO리그에도 라스트 댄스가 상영 중인지도 모른다. 시즌 막판 6위까지 떨어졌던 두산 베어스의 2020시즌을 두고 하는 얘기다. 두산은 기어코 3위까지 점프, 정규시즌을 마무리했다.
포스트시즌이 되자 '가을 DNA'를 유감 없이 발휘한다. 난적 LG 트윈스와 KT 위즈를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서 일방적으로 몰아친다. LG를 상대로 2승(3전2선승제)으로 끝냈다. KT에도 먼저 2승(5전3선승제)을 따냈다. 1승만 보태면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다.
두산은 올 시즌을 끝으로 FA를 무더기로 배출한다. 허경민, 오재일, 김재호, 최주환, 정수빈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몇 명인지는 FA 신청기간이 끝나야 알 수 있지만, 전례 없는 케이스인 건 확실하다.
2020~2021년 FA 시장이 코로나19로 지난 1~2년보다 상당히 위축될 게 확실하다. 어느 팀이라도 이 정도로 주축 선수가 FA 시장에 한꺼번에 나가면 전력 출혈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두산이 내년부터 전력이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KBO리그 판 라스트 댄스라고 해도 말이 되는 이유다.
지금도 두산의 객관적 전력은 2016년 통합우승, 2017~2018 한국시리즈 준우승 때보다 떨어진다. 시즌 내내 4~5위권이었다. 2015년부터 계속 최상위권에 있으면서 어느덧 30대 중반의 베테랑이 가장 많은 팀이 됐다. 이들은 최근 그 어느 팀보다 육체적, 정신적 데미지가 큰 포스트시즌, 특히 한국시리즈를 많이 치렀다. 자연스럽게 잔부상이 늘었고, 기량 자체도 절정기에서 조금씩 떨어졌다. 사실 키움과 LG가 시즌 막판 알아서 뒷걸음 하면서 3위까지 오른 측면도 있었다. (물론 시즌 중반 이후 젊은 투수들 중심으로 불펜을 정비하고, 타격 응집력을 끌어올린 건 두산의 저력이었다)
이번 포스트시즌을 보면 '역시 두산은 두산'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른다. 단순히 안타 하나를 더 치거나 덜 치고, 스트라이크 하나를 더 잡거나 덜 잡고의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된다. 코칭스태프와 선수 모두 확실히 매 순간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실제로 수행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KT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단순하게 보면 9회 희생번트 하나로 희비가 엇갈렸다. 두산은 무사 2루서 오재원이 해냈고, KT는 무사 1루서 조용호가 번트 파울플라이로 물러났다. 두산은 1사 3루서 결승점을 냈고, KT는 1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2차전도 디테일에서 갈렸다. KT는 1회 무사 2루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주자가 나갔으나 끝내 득점권에서 한 방이 나오지 않았다. 반면 두산은 2회 허경민 타석에서 히트&런을 깔끔하게 성공한 뒤 선취점을 냈다. 주도권을 갖는 순간이었다.
숨은 1인치가 또 있다. 감독 6년차이지만 6년 내내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심지어 5년 연속 한국시리즈를 치렀던 김태형 감독 특유의 '야구 직감'이다. 김 감독은 1차전 9회 결승타를 날린 대타 김인태에게 "(스트라이크)존을 넓히고 공격적으로 타격하라"고 했다. 9회말 도중에는 갑자기 포수 박세혁을 불러 "베테랑 타자들은 불리한 볼카운트라고 해도 변화구 실투를 놓치지 않는다. 이영하의 하이패스트볼이 좋으니, 패스트볼을 유인구로 활용해라"고 지시했다. 둘 다 통했다.
김 감독은 1차전에 이어 2차전에도 마무리 이영하에게 직접 방문, 날카로운 조언을 건넸다. 김 감독은 "150km 던질 생각을 하지 말고 가운데로 던져라. 베테랑들을 상대로 어렵게 승부해봤자 실투를 다 친다. 빠른 볼카운트에서 단순하게 승부하라"고 했다. 이영하는 마무리로서 경험이 부족한 약점이 있다. 대신 스태미너는 강력하다. 김 감독의 조언 속에 1~2차전 모두 직접 마무리했다. 두산 벤치워크의 힘이었다.
두산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수년간 가을야구의 정점에서 성공과 실패를 체험한 뒤 개개인의 경쟁력으로 승화한 DNA가 있다. 키움, LG, KT는 갖고 있지 않은, 결코 숫자 혹은 과학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무기다.
2020년 가을, 두산의 라스트 댄스가 점점 더 화려해지고 무서워진다. 한국시리즈에서 기다리는 NC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두산 선수단.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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