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대중이 '천만 요정'이라는 아름다운 별칭까지 지어주셨는데, 얼마나 실망이 크셨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배우 오달수(53)가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이웃사촌' 홍보차 라운드 인터뷰를 열었다. 동료 배우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활동을 중단했던 오달수가 약 2년 9개월 만에 취재진과 만나는 자리였다.
'이웃사촌'은 좌천 위기의 도청팀이 자택 격리된 정치인 가족의 옆집으로 위장 이사를 오게 되어 낮이고 밤이고 감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1280만 관객을 웃기고 울린 '7번방의 선물'을 연출한 이환경 감독의 신작이다. 극중 오달수는 해외에서 입국하자마자 오래 전부터 자신을 견제해온 안정부 김실장(김희원)에 의해 강제적 자택격리를 당하게 되는 유력 대권주자이자 야당 총재 의식을 연기해 대권 역의 정우와 호흡을 맞췄다.
무엇보다 '이웃사촌'은 오달수의 스크린 복귀작이라 영화계 안팎으로 관심이 지대하다. 여러 흥행작에 출연하며 일명 '천만 요정'이라는 별명으로 관객의 사랑을 두루 받았던 오달수가 지난 2018년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돼 개봉에 난항을 겪었던 작품이기 때문. 오달수는 과거 극단에서 함께 연기했던 여성 배우들로부터 '미투' 폭로를 당한 뒤 "저를 둘러싸고 제기된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며 "저는 댓글과 그 익명 댓글을 토대로 작성된 기사를 접하는 순간, 참담한 심정으로 1990년대 초반의 삶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30년 전, 20대 초반으로 돌아가 차분히 스스로를 돌이켜 보았지만, 그런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입장을 냈던 바다.
그럼에도 대중의 실망감은 걷잡을 수 없었고 오달수는 이후 약 2년 간 서울을 떠나 칩거생활을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내사 종결로 무혐의 판결을 받고 '이웃사촌'을 통해 다시금 스크린에 나선 오달수다. "책임감을 느낀다"며 영화 홍보 일정에도 적극 참여 중이다.
이날 취재진과 만난 오달수는 2018년 '미투' 폭로 당시를 회상했다. 영화 후반 촬영에 집중하고 있었다던 그는 "믿기지가 않았다. 뉴스에서 난리가 났을 때 사실 영화 후반부의 중요 장면들을 작업해야 했다. 그래서 저도 대책을 마련한다든지의 시간이 없었다. 촬영이 다 끝난 뒤 서울에 올라오고 나서야 여론, 사회의 분위기 등을 체감했다"라고 밝혔다.
거제도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지냈다고 전한 오달수는 "사람이 덤프트럭에 치이게 되니까 정신을 못 차렷다. 그래서 술로 하루를 계속 지내다가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두 달 정도 서울에서 정신을 차리다가 부산으로 갔고, 불편한 점이 있어서 거제도로 내려갔다. 부산과 거제도를 오가면서 지냈다"며 "거제도에서 해가 지고 나면 할 게 없다. 그래서 TV나 영화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 아무리 생각 없이 지낸다 해도 '내가 있어야할 곳이 여기가 아니라 현장인데'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연기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대중의 질타가 여전한 가운데에서도 오달수는 언론시사회를 비롯해 인터뷰 등 공식적인 자리에 모두 나서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너무 무섭고 떨렸다. 섬에 혼자 있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나서려면 큰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도 보통 용기가 아니다"라고 토로하면서도 "하지만 앞뒤 사정, 시시비비 다 떠나서 저에게는 무한 책임이란 게 있다.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 제작사가 굉장히 어려워졌다. 감독님은 겉으론 괜찮다고 하지만 어쨌든 저 때문에 피해를 줬다. 처음에 기자 시사회를 나가시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협조해주고, 지난 이야기를 궁금해하셨을 수도 있으니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라고 적극 참여 이유를 밝혔다.
성추행 폭로 당시 "사실이 아니"라고 냈던 입장에 대해서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제가 회사를 통해서 입장문을 두 번 정도 냈다. 그 때와 지금 생각은 전혀 변함이 없다. 단지 서로의 생각과 기억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라며 "제가 만나서 뭐라고 회유를 할 수도 없다. 만나서도 안 된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문제 제기를 하시는 게 더 정확한 이야기같다"라고 말했다.
대신 '이웃사촌'이 스크린 복귀작으로 여겨지는 것과 관련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오달수는 "언뜻 보기에는 제가 복귀를 한 것처럼 보일 거다. 다만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봤던 '이웃사촌' 팀을 위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해드리는 것이다"라며 "작품이 들어오면 하고, 조금 더 지켜보자고 하면 지켜볼 거다. 진정한 복귀는 이 시간 이후로 캐스팅이 되어서 새 작품에 들어가는 게 복귀가 아닐까 싶다. 당연히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라고 전하며 연기 의지를 밝혔다.
사태가 불거지기 전 이미 '컨트롤'(감독 한 장혁), '니 부모의 얼굴이 보고 싶다'(감독 김지훈)까지 촬영을 마쳤던 오달수. 그는 관객들에게 재차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했다. "2018년에는 어마어마한 쓰나미가 몰려왔던 기분이다. 사회에서의 여성의 지위 등 굉장히 변형의 물꼬를 튼 시기다. 그래서 그 이후 대중의 의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번 영화를 보면 알 거다. 얼마만큼 관용이 있는지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작게나마 기대해본다"라며 "다시 '천만 요정' 등 "그런 걸 바란다면 정말 경우가 없는 거다. 시간이 흐르고 다른 작품을 하고 차근차근 시간을 두고 관객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 "심려를 끼쳐드린 부분에 있어서는 지금도 너무 죄송스럽게, 죄스럽게 생각한다. 더불어 희한한, 아름다운 별칭까지 지어주셨는데 얼마나 실망이 크셨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작품이 좋으니까 작품은 작품대로 대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웃사촌' 홍보도 잊지 않았다. 오달수는 "영화는 기대 이상이다. 저 빼고는 다 좋더라. 주변인물의 삶을 주로 연기하다가 야당 총재가 낯설다고 많이들 말씀하시던데 저 역시 그렇게 봤다. 익숙한 모습은 아니었다 .감독님은 코믹 이미지가 강한 배우가 진지한 연기를 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 해보자고 하셨다. 저도 혼신을 다해서 했다. 선입견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진정성이 있어야 했다. 극이 시작되고 5분이 지나면 그 인물로 관객과 약속을 하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관객 분들만 믿고 도전을 해봤다"며 "최근 코로나 1.5단계로 격상이 됐는데, 이 엄중한 시기에 극장을 꼭 찾아달라는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애정을 가지고 도와주시면 감사드리겠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웃사촌'에는 오달수를 비롯해 정우, 김희원, 김병철, 조현철, 염혜란 등 대한민국 대표 연기파 배우들이 1980년대로 돌아가 그 시절의 보통 사람들을 연기했다. 오는 25일 개봉.
[사진 = 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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