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장윤호 기자]14년 만의 금의환향(錦衣還鄕)이다. 6년 총액 150억 원이라는 KBO리그 40년 역사상 자유계약선수(FA) 계약 총액 최다 몸값 타이기록을 세우고 고향 팀 KIA 타이거즈 유니폼을 처음 입게 됐다.
2007년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2008년 연세대에 진학하면서 고향 광주를 처음 떠난 좌투좌타 외야수 나성범의 귀향에는 무려 14년이 걸렸다. 마치 10대에 고향 집을 나가 서른두 살이 돼 돌아온 것 같다.
그러나 연고 팀인 KIA 타이거즈에 투수와 타자로 모두 2인자 평가를 받으며 두 번의 피눈물을 흘렸던 14년 전 여름과 현재의 위상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다. 이제는 당대 최고의 1인자가 돼 돌아온 것이다.
현재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그의 KIA 행 기사를 보면서 많은 팬들은 나성범이 도대체 왜 연고팀 KIA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지 못하고 대학에 진학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2008년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연고 구단 KIA 타이거즈가 아닌 서울 LG 트윈스에 4라운드에 지명됐으나 연세대로 갔다는 단편적인 설명이 있을 뿐이다.
내년 시즌부터 KBO리그가 연고지 우선 지명이 없는 전면 드래프트로 바뀌게 되지만 2007년 여름 열린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연고 선수 우선인 1차 지명, 그리고 전년도 성적 역순으로 지명하는 2차 드래프트가 있었다.
그러니까 KIA 타이거즈 구단은 200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차와 2차 지명 기회 때 연속으로 나성범을 후 순위에 두고 지명하지 않아 결국 연세대로 갈 수밖에 없게 만든 측면이 있다. 1차 지명을 했더라면 나성범은 무조건 KIA 유니폼을 입었을 것이 확실하다.
KIA 타이거즈는 2007년 6월5일 발표한 연고지 1차 지명에서 군산상고 투수 전태현을 지명했다. 나성범이 광주진흥고 시절 투수와 타자로 모두 활약했으나 어쨌든 외면을 받았다.
전태현은 고교시절 독특한 우완 사이드암 투수로 기대를 모았다. 계약금 1억8000만원을 받고 KIA에 입단했으나 빛을 보지 목하고 군 복무 시절 개명까지 하면서까지 야구로 성공하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 한 번도 1군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2016시즌 후 방출됐다.
물론 당시 KIA가 전태현을 1차 지명하지 않았으면 LG에 2차 1라운드로 지명된 정찬헌(현 키움 히어로즈)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나성범은 후 순위였다.
나성범이 KIA에 1차 지명되지 않자 대학야구에서 고려대와 숙명의 라이벌전을 펼치는 연세대가 스카우트에 나섰다. 그래도 KIA에 한 번 더 나성범을 잡을 기회는 분명히 있었다. 1차 지명 후 두 달이 지나 8월16일 열린 2차 신인 드래프트이다.
2006년 페넌트레이스 순위 역순으로 지명이 시작됐는데 2차 1라운드 1번에 LG가 광주일고 투수 정찬헌, 2번 롯데 경남고 투수 하준호, 3번 SK 광주일고-성균관대 내야수 모창민, 4번 두산 인천고 포수 김재환, 그리고 5번으로 나선 KIA 타이거즈는 나성범이 아닌 신일고-단국대 내야수 나지완을 지명했다.
앞선 순위를 가진 팀이 나성범을 먼저 지명했다면 KIA도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나성범은 선택을 받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KIA의 결정을 간절히 소망했으나 연고팀 KIA는 2차에서도 그를 외면했다.
결국 LG가 2차 4라운드에 나성범을 지명했으나 이미 그는 연고 팀 KIA 타이거즈로부터 커다란 상처를 두 번이나 받았다.
1차 연고지 지명에서는 군산상고 투수 전태현에 밀렸고, 2차 1라운드에서는 연고지 출신이 아닌 타자 나지완에 뒤졌다. 결국 투수와 타자로서 모두 KIA 타이거즈에 2순위, 2인자 위치의 선수였던 것이다.
눈물을 감추고 고향을 떠났던 나성범은 연세대를 졸업하고 신생 팀 창원 NC 다이노스의 지명을 받아 9년간 뛴 뒤 자유의 몸이 돼 마침내 14년 만에 KIA 타이거즈 팬들의 뜨거운 환영의 박수를 받으며 고향에 돌아왔다.
[사진=기아 타이거즈]
장윤호 기자 changyh21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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