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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크라이나 소년이 스페인 택시기사들의 호송대 차량에 타고 있다. /AFPBBNews]
[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지난 17일(현지시각) 오전 스페인 마드리드에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태운 택시 29대가 경적을 울리며 들어섰다. 길 가에 늘어선 수백명의 시민이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를 쳤다.
마드리드 중심가 ‘푸에르타 델 솔’ 근처에서 내린 135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자신들을 태워준 기사를 꼭 부둥켜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대부분 아버지와 남편을 우크라이나에 남기고 폴란드로 탈출한 어린이와 여성들. 강아지 네 마리, 고양이 한 마리도 함께 도착했다.
마드리드에서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왕복 약 6000㎞에 걸친 총 5일간의 대장정이 무사히 끝나고 이들이 난민 혜택을 받게 된 데 대해 택시 기사들은 안도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태운 스페인 택시기사들의 호송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AFPBBNews]
우크라이나 난민 수송을 위한 택시 호송대는 공항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기사들의 수다에서 시작됐다.
마드리드 택시 연맹 호세 푸네즈씨는 AFP 통신에 “우크라이나 이야기를 한참 하다 누군가 ‘폴란드로 가서 난민들을 데려오자’고 했고, 순식간에 ‘좋은 생각’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고 했다.
동료 기사들에게 이 아이디어를 전하자 수십명이 자원했다. 60명의 기사가 29대의 중·대형 택시에 나눠 타고 지난 11일 마드리드를 출발했다.
폴란드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프랑스와 벨기에, 독일을 거쳐 약 3000㎞를 두 기사가 번갈아가며 밤낮으로 운전했다. 그동안 마드리드의 주(駐) 스페인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스페인에 연고가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데려올 난민을 선정했다.
[스페인 택시기사의 호송대에 실려 온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레스토랑에 정차하던 중 택시에서 내리고 있다. /AFPBBNews]
택시 기사와 난민의 첫 만남은 어색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통역 앱을 써야 했다. 마드리드로 오는 길에 휴게소에 멈춰 서자 차에서 내리지 않으려는 난민도 있었다. 자신을 버려둔 채 떠나 버릴까 하는 공포 때문이었다.
택시 기사 하비에르 헤르난데즈(47)씨는 “시간이 지나자 어색함이 녹고 오래 함께한 듯한 유대감이 생겼다”며 “‘처음 그라시아스(고맙다)’라는 말을 듣고 눈물이 터져나왔다”고 했다.
이번 프로젝트엔 연료비와 고속도로 통행료, 식비 등으로 5만유로(약 6700만원)가 들었다.
마드리드의 택시 기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경비를 만들었다. 택시 기사 자녀들이 저금통을 털어 내놓기도 했다.
택시 기사 누리아 마르티네즈(34)씨는 “다른 우크라이나 난민을 두고 오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며 “더 많은 이를 데려오기 위해 조만간 다시 길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스페인 택시기사의 호송대에 실려 온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레스토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FPBBNews]
택시를 타고 동생이 있는 스페인에 발을 들인 우크라이나인 크리스티나 트라크(22)씨는 기사들을 "우리의 영웅"이라고 부르며 감사함을 표시했다.
조부모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 두고 온 트라크씨는 일자리를 찾아 조국과 가족을 도울 수 있도록 돈을 버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15살짜리 아들 손을 잡고 키이우를 떠난 올하 쇼카리바(46)씨는 "우리 집이 남아있는지,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쇼카리바씨의 남편과 큰아들은 각각 키이우와 우크라이나 서부 빈니차에 남아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다고 전했다.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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