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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강다윤 기자] 가수 현미가 세상을 떠난 전남편 故이봉조를 추억했다.
9일 방송된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는 대중가요계 원조 디바 가수 현미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재조명됐다.
이날 현미는 "그분(이봉조) 덕분에 내가 오늘날 스타가 됐다. 히트송이 수도 없이 많다. 그분 덕분에 이렇게 스타가 돼서 잘 산다. 그분이 나의 은인이오, 스승이오, 애인이오, 남편이라고 생각한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현미의 안방에서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는 1987년 미 8군 공연 시절, 이봉조에게 연애시절 받은 엽서가 자리했다. 현미는 이봉조가 붓글씨로 쓴 엽서를 읽으며 "나한테 보낸 거다.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얼마나 소중하냐"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미 8군 부대에서 시작됐다. 현미가 공연을 다닐 때 이봉조가 밴드마스터였다고. 현미는 "이봉조 선생님이 그때 눈이 새카맣고 잘생겼는데 나한테 그렇게 친절했다. 추운 겨울에 트럭을 타면 자기 양말을 벗어서 내 발에 신겨주면서 그렇게 날 챙겼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때는 12시간 통행금지였다. 나와 이봉조 선생님이 처음 갔던 여관이 아직도 있다. 그래서 내가 가끔 남산에 올라가서 본다. 그래서 연애가 시작됐다. 연애를 지독하게 했다. 매일 밤, 매일 만났다"고 행복했던 추억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러나 이내 현미는 이봉조에게 속았음을 털어놨다. 그는 "그때 그 사람이 유부남인 줄도 몰랐다. 그때 26살인데 누가 유부남인 줄 아느냐. 이미 딸이 두 명 있는 유부남인데 나한테 총각이라 그래서 연애를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딸이 둘 있는 유부남이더라"고 털어놨다.
더군다나 이미 뱃속에 이봉조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던 현미. 결국 자신을 선택한 이봉조와 가정을 꾸려 두 아들을 낳으며 결혼생활을 했다고. 그러나 이봉조는 현미와 가정을 이룬 후에도 본처와의 사이에서 자식 둘을 더 낳았다. 이를 알게 된 현미는 이봉조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현미는 "(이봉조가) 그날 밤에 술을 이렇게 마시고 나한테 겁을 주려고 들어와서, 들어오면서부터 야구방망이를 가지고 살림을 다 때려 부쉈다. 얼마나 무서우냐. 그때 추운 겨울이었다. 그래 가지고 잠옷 바람에 밍크코트 하나 입고 애들 데리고 도망 나왔다. 그렇게 헤어졌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날 이후 영원한 이별을 한 두 사람. 그러나 이봉조는 오래도록 현미를 그리워했다고. 현미 또한 생전 이봉조의 영상을 보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그는 "이게 87년도인가 아마 그럴 거다. 나하고 헤어졌을 때. 저게 지금 틀니로 부는 거다. 보통 틀니하고 색소폰을 분다는 건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한다"며 눈물을 훔쳤다.
이어 "그 잘생긴 사람이 말라가지고 나한테 아래위에다 틀니를 보여줬다. 내가 이렇게 불쌍하게 살고 있는데 네가 나를 이래도 안 받아줄 거냐.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렇게 놔두면 안 되겠더라"며 "'내가 다시 모실 테니까 건강하게 우리 다시 살자'고 했는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운명이 거기까지 밖에 안됐나 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안됐다"고 세상을 떠난 이봉조에 대한 안쓰러움을 드러냈다.
이후 4년 전, 이봉조의 묘소를 찾은 현미의 모습이 이어졌다. 양손 가득 꽃다발을 들고 온 현미는 "영곤 아빠 잘 계셨어? 내가 혼자 산지 지금 40년이다. 나빠. 나쁘다고"라며 눈물을 보였다.
그러면서 "사람이 죽은 다음에 묘 잘 쓰고 찾아오면 뭐하냐. 살아있을 때 따뜻한 밥 한 끼 먹고 같이 대화하고 웃고 즐기고 이래야지 아무 소용없다. 바보 같다. 그날만 안 그랬으면 우리가 서럽게 살진 않았을 거다"고 원망과 함께 애틋함, 안쓰러움 등이 가득한 복잡한 마음을 전했다.
[사진 =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방송 캡처]
강다윤 기자 k_yo_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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