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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성호 기자]한 금융회사 노조 위원장을 10년째 맡고 있는 A씨. 인사철마다 찾아오는 수많은 조합원을 하나씩 만난다고 한다. 승진이나 원하는 보직에 가기 위해 A씨에게 청탁을 하려는 것이다.
A씨를 만날 때 상품권이나 현금을 바쳐야 한다는 건 사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찾아오지 않는 조합원이 있으면 “이 사람이 때가 됐는데 안 찾아오네”라는 말을 흘려 당사자 귀에 들어가게 한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한 기업 노조 조합원 B씨는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 계좌에서 ‘레슨비’ ‘편의점비’ 같은 명목으로 돈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매달 빠져나가는 금액은 B씨가 받는 월급 2배가 넘었다.
의심스러운 금액을 모두 합하니 5억원 이상. B씨가 노조 위원장에게 용처를 묻자 위원장은 “직원 복지에 썼다”고 했다. 그러나 조합원 중 복지 혜택을 받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항의가 이어지자 위원장은 B씨를 노조에서 제명했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1월 26일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를 온라인에 열고 기업·노조 양측 불법·부당행위에 대해 받은 신고 내용 중 일부다. 정부가 노조 부당행위 신고를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지난달 말까지 34일간 총 301건 신고가 접수됐는데, 250건은 임금 체불, 직장 내 괴롭힘, 부당 해고 등 사측 잘못이었고. 51건이 노조 불법·부당행위였다.
노조 부당행위는 다수 노조나 상급단체가 소수 노조나 근로자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는 내용이 많았다.
한 건설노조 조합원은 자기가 다니는 건설 현장과 관계 없는 현장의 파업 집회에 강제로 동원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노조가 집회 일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참석하지 않으면 조합원에서 제명하겠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하겠다’고 위협한다”고 전했다.
이 노조는 각 현장과 계약을 맺어 소속 조합원만 그 현장에서 일할 수 있게 하고 있었기에 노조에서 쫓겨나면 일자리를 잃는다. 어느 산별노조 기업별 ‘지회’ 관계자는 산별노조가 지회 조합원들 탈퇴를 막고 있다고 했다.
노조 간부가 폭행과 협박, 금품 갈취를 일삼는다는 신고도 있었다.
노조 조합원이 아닌 회사 간부에게 “인사를 하지 않는다”며 욕설하고 물건을 던졌다는 신고, 노조 간부가 일반 조합원 중 한 사람을 찍어 “행정기관에 민원을 자주 제기한다”면서 폭행을 했다는 신고, 조합원 동의를 받지 않고 조합비 명목으로 임금에서 돈을 떼어가고 있다는 신고 등이 접수됐다.
노조 회계가 불투명하다는 신고도 여럿이었다.
한 조합원은 노조 회계 보고서에 ‘쟁의기금’과 ‘판공비(업무추진비)’ 등 명목으로 돈이 지출됐다는 것을 알았다.
이 노조는 지난해에 코로나를 이유로 쟁의행위는 물론 어떤 행사도 하지 않았는데도 이를 이유로 돈이 사라진 것이다. 이 노조 조합비 계좌는 위원장 개인 명의 계좌였고, 회계감사원은 한 간부 배우자로 지정돼 있었다.
노조가 조합원들이 열람할 수 있게 회계 관련 장부나 서류를 노조 사무실에 비치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고 있다는 신고들도 다수였다.
이런 노조들은 조합원들이 회계 장부 열람을 요구해도 장부를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 노조는 장부를 보여주긴 했지만 수백쪽에 달하는 자료를 “오전 중에, 눈으로만 다 보라”는 식으로 제한해 제대로 살펴볼 수 없게 했다. 회계를 아예 공개하지도 않고, 회계감사도 실시하지 않고 있는 노조가 있다는 신고도 들어왔다.
기업 부당행위에 대한 신고로는 주 52시간을 넘겨 초과 근무를 시키면서 초과 근로 수당도 제대로 주고 있지 않다는 ‘임금 체불’ 관련이 많았다.
근로 시간을 제대로 측정하지 않고 ‘포괄임금’이라는 명목으로 고정액을 지급하면서 추가 수당을 떼어먹는 경우도 있었다. 근로자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신규 입사자의 노조 가입을 방해한다는 신고도 접수됐다.
고용부는 신고 접수된 사항들에 대해 전담 근로감독관들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한편,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안은 관할 고용노동청을 통해 수사와 근로감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그간 사용자의 법·제도 위반이나 근로자의 부정 수급에 대한 신고 채널만 있어, 노조의 경우에는 내부 갈등이나 불이익 우려 등을 이유로 다양한 문제가 관행적으로 묵인되는 경우가 있었다”며 “이제 노조의 부조리 신고 방안이 마련돼 그간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던 다양한 사례가 신고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호 기자 shkim@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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