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스티븐 스필버그(76) 감독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데뷔작 ‘대결’(1971)에서 얼굴없는 트럭 기사의 집요한 추격으로 긴장감을 쌓아올린 그는 ‘죠스’(1975)로 블록버스터의 신기원을 열며 흥행감독의 입지를 다졌다. 신비롭고 낭만적인 ‘미지와의 조우’(1977)를 거쳐 ‘ET’(1982)에선 자전거를 타고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SF의 상상력을 마음껏 펼쳤다. 이어 ‘레이더스’(1982)의 인디아나 존스(해리슨 포드)를 내세워 4편에 걸쳐 관객을 어드벤처의 롤러코스터에 태웠다. ‘쥬라기공원’(1993)의 티라노사우루스는 지금이라도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 생생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극장에 가게 된 여섯 살 소년 새미(가브리엘 라벨)는 스크린에 펼쳐진 영화 ‘지상 최대의 쇼’를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큰 스크린 속에 영사된 기차의 충돌 장면은 계속해서 그의 머릿속에 맴돌아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새미는 아빠(폴 다노)에게 선물 받은 장난감 기차로 사고 장면을 재연해보지만 부딪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단 한번 뿐. 그때 엄마 미치(미셸 윌리엄스)가 아빠의 8mm 카메라를 건네며 그 순간을 촬영해서 남기자고 제안한다. 그날부터 그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담아내며 영화와 사랑에 빠져든다.
‘파벨만스’는 스필버그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겼다. 보이스카웃 시절 친구들과 2차 대전 배경의 영화를 찍을 땐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원형이 떠오른다. 장난감 기차를 여러차례 충돌시키며 촬영을 거듭하는 모습에선 훗날 액션 블록버스터를 능수능란하게 찍을 수 있었던 그의 열망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평소 “편집을 사랑한다”고 말한 그는 아빠가 사다준 편집기로 새로운 영화언어를 발명하며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반유대주의를 드러내며 자신을 괴롭힌 동급생에 복수하는 에피소드는 그가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에서 나치를 궁지에 빠트렸던 이야기와 오버랩된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만약 뭘 할지 독립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만큼 성공한다면, 나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 위대한 과업을 해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항상 스스로에게 말하고 했다”고 밝혔다. 후자가 ‘링컨’이라면, 전자는 ‘파벨만스’다. 그는 76살이 되어서야 가장 내밀한 과거의 기억과 마주했다. 스필버그 영화에서 아빠는 항상 부재하거나 아들과 불화했다. ‘ET’, ‘후크’, ‘인디아나 존스-최후의 성전’을 떠올려보라. 그는 부모님의 이혼을 아빠 탓으로 돌렸으며, 둘은 15년동안 왕래가 없다가 1990년에 화해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돌아가신 아빠를 감싸안는다.
스필버그가 ‘영화 만들기’의 테크닉을 하나 둘씩 체득해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총소리가 화면에 번쩍거리게 만드는 방법(셀룰로이드에 핀자국)을 깨닫고, 현실을 재구성하는 프레이밍과 편집의 힘에 눈을 뜬다. 그는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카메라로 알아낸다. 아빠의 친구로 늘 함께 살았던 베니(세스 로건)가 엄마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카메라를 통해 인지한다. 해변으로 떠난 ‘땡땡이의 날(Ditch day)’에서 자신을 괴롭힌 친구 한 명을 외톨이로, 또 다른 친구는 덩치만 큰 인물로 편집해 둘 모두 좌절감을 느끼게 만든다. 카메라와 영화는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었고, 현실을 재창조하는 예술이었다.
공학적 마인드을 가진 아빠와 음악적 감수성을 지닌 엄마의 갈등, 애리조나를 떠나 낯선 캘리포니아에서 차별을 겪으면서도 그는 영화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관객은 어느새 ‘스필버그의 시네마천국’을 관람하며 한 소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세계적 거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목도하게 된다. 가족과 영화, 꿈과 예술, 도전과 모험 등 스필버그의 영화 세계가 한 프레임씩 펼쳐질 때마다 우리도 시네마키드가 된다. 극의 마지막, 어느 거장의 조언 듣고 감동을 받은 그는 부푼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이후 스필버그가 걸었던 길은 우리 모두가 꿈꾸던 세상이었다.
[사진 = CJ엔터테인먼트]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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