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마이데일리 = 이지혜 기자] 신촌 아트레온 갤러리는 허진의 ‘왈츠 포 사일런스’ 초대작가전을을 오는 전시는 21일 부터 10월 14일까지 개최한다고 11일 밝혔다.
허진은 추사 김정희의 수제자인 소치 허련의 고조손이다. 한국 서정을 담은 신남화를 이뤄내며 수많은 후학을 길러낸 남농 허건의 장손으로, 운림산방의 화맥을 5대째 이어오고 있다.
허진의 작품은 컬러풀한 색감과 화면을 꽉 채운 구도를 보이며 전통 회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남종화가 외적인 대상의 사실 묘사와 형상보다는 내적인 뜻을 그리는 사의를 중시하는 흐름이었던 것을 떠올리면 허진 작품에도 역시 그 정신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40여 년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늘 ‘인간에 대한 탐구’를 주제로 작업했다. 그러한 인간에 대한 탐구는 자연으로 이어졌고 작가의 사유 속에서 인간과 자연 즉 동물은 하나가 되어 만났다.
<이종융합동물+유토피아> 연작에서 그는 유전공학과 생명공학 기술로 탄생한 기이한 융합동물을 부각시킨다. 이는 자연 생태계 균형을 교란하는 물질 문명에 대한 작가의 경고와 경각심이다. 그 동물 사이를 드라이기, 신발, 스마트폰 등 화려한 색감으로 부각된 문명의 이기들이 부유한다. 그 동물과 물질 사이에 걸쳐지기도 하고 배제되기도 하며, 검은색과 노란색으로 나뉜 사람의 실루엣이 거꾸로 매달리거나 비스듬히 기울어져 위태하고 정처 없이 떠다니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이종융합동물과 인간, 물질문명은 모두 같은 운명 공동체이며, 문명 발달 속에서 융합과 해체를 오가며 서로를 위태롭게 하는 존재가 되어감을 보여 준다. 반면에 검은색으로 화면 전반에 흩어져 표현된 섬들 태곳적부터 거기에 있었던 산수풍경처럼 고요하면서도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섬이 바로 작가가 제시하는 유토피아다.
허진은 “소년 시절 평화롭게 각인된 다도해 풍경과 홍길동전의 율도국, 서양의 아틀란티스와 같은 섬이 공동체적 회복의 이상향이 됐다”고 말했다.
<유목동물+인간-문명> 연작도 위와 같은 선상에서 작업 되었다. 작가가 전면에 내세우는 동물은 야생의 것이다.
최석원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는 “허진은 비윤리적으로 포획되어 동물원에 전시되지 않는다면 자신을 비롯한 현대 도시인이 좀처럼 보기 힘든 자연 속 동물을 그린다”며 “자연에는 실재하나 인간 세계에 부재하는 야생 동물을 그리는 작업은, 단어 ‘그리다’의 다의(多義)를 구현하듯, 동물을 ‘재현’하고 동시에 ‘상상’하는 일로 멀고 먼 야생의 자연이 현대인의 눈앞에 현전(現前)하게끔 하기 위해 동물을 그리고 또 그린다”고 평했다.
야생 동물을 쉬 볼 수 없는 이 시대가 자연과 상생하지 못하는 현실을 대변함과 동시에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회복의 이상향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물론 작가는 그림을 통해 명확하게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작가가 표현방식으로는 서사적 미적 구조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형상적 유희 세계를 추구하였으나, 외적 사상과 내적 감흥을 소화하여 함축과 암시와 상징적인 형이상학적인 세계로 승화시키는 동양화 정신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고민 속에서 동양화의 여백도 다르게 표현했다. 대상의 둘레로 점점이 채워진 배경은 동양화의 여백을 확장시킨 작가만의 여백이다.
허진은 “전통을 무시하면 안 된다. 나는 또 전통에 매여 있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줄타기하는 광대처럼 한쪽은 전통 또 한쪽은 현대를 잡고 균형을 이루며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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