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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노한빈 기자] 김지운 감독의 신작 '거미집'은 가벼운 듯하면서도 무겁다. 장르를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웃음을 유발하는 가운데서도 욕망과 열정이 폭발하는 대목에선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970년대 김열 감독(송강호)은 성공적이었던 데뷔작 이후 싸구려 치정극 전문이라는 혹평에 시달린다. 악평과 조롱으로 괴로워하던 그는 어느 날부터 촬영을 마친 영화 '거미집'의 새로운 결말을 꿈꾼다.
꿈 속 영감으로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나올 거라는 믿음이 생긴 김 감독은 제작사를 찾아가 재촬영을 요청한다. 하지만 유신정권 하에서 심의를 받지 않고 재촬영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 위기의 순간에 제작사의 후계자 신미도(전여빈)가 걸작 탄생을 예감하며 김 감독을 돕는다.
우여곡절 끝에 김 감독은 베테랑 배우 이민자(임수정), 톱스타 강호세(오정세), 라이징 스타 한유림(정수정)을 불러 모아 재촬영을 감행한다. 배우들은 바뀐 대본과 재촬영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고, 심의를 통과받지 못한 시나리오에 검열 담당자까지 촬영장에 들이닥치며 촬영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밀정'(2016) 등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은 신작 '거미집'에서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으로 몰입력을 끌어올린다. 영화 속 영화라는 점도 흥미로운데, 이를 흑백으로 처리하면서 한 번에 두 가지 영화를 보는 듯한 연출을 선보인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흡인력을 높인다. 송강호는 믿고 보는 배우의 저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 확신을 갖고 있지만 여러 난관에 봉착하는 김 감독의 감정선을 적절한 완급조절로 표현했다. 특히 모호한 표정 연기는 압권이다.
정수정은 기대 이상의 섬세한 연기를 그려내고, 전여빈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흥미를 높인다.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의 캐릭터에 완벽하게 동화된 임수정, 오정세, 박정수의 열연도 돋보인다. 이 가운데 오정세의 코믹 연기는 단연 발군이다.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등에서 알 수 있듯, 김지운 감독은 유머러스한 상황을 연출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 영화에서도 난장판처럼 변해가는 촬영장을 배경으로 치정 멜로부터 괴기 호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변주하며 광기와 폭소를 쥐락펴락하는 내공을 발산한다. 무엇보다 개인들의 작은 욕망이 얽히고설켜 허우적거리는 희극적 상황이 우리네 인생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거미집'은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정신도 담아냈다. 제작사도, 배우들도 김 감독을 믿지 않고 막장 시나리오라며 비난하지만, 김 감독은 자기 자신을 끝까지 믿는다.
김지운 감독은 "김 감독이 불합리한 세계에서 마주하는 난관과 역경을 어떻게 돌파하는지, 어떻게 꿈을 실현해 나가는지를 그렸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영화를 끝까지 만들어낸, 꿈을 이루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장르를 가로지르며 유쾌하고 유머러스면서도 때론 광기까지 담아낸 '거미집'은 내 안에 잠들어있는 ‘열정’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되기도 한 '거미집'은 오는 27일 전국 개봉한다. 상영 시간은 132분이며, 15세 이상 관람가다.
노한빈 기자 beanhan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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