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 보스톤’ 강제규 “‘미생’ 임시완에 반해, 남자 스태프가 너무 좋아하더라”[MD인터뷰]

강제규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강제규 감독은 ‘쉬리’(1999)로 한국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쉬리’는 충무로에 영화산업의 틀을 갖추는 계기가 됐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실미도’에 이어 두 번째 천만영화에 등극했다. ‘1947 보스톤’까지 감안하면, 세 영화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는 분단의 아픔 또는 비극을 겪는 인물들의 극적인 이야기에 끌린다.

“저는 대의명분을 위해서 영화를 만들지 않아요. ‘태극기 휘날리며’도 한국전쟁의 본질에 집중했을 뿐이죠. ‘1947 보스톤’ 역시 미 군정 치하의 열악한 상황에서 꿈과 희망을 안고 달리는 세 명의 마라토너에 매력을 느꼈어요.”

‘1947 보스톤’은 1947년 광복 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마라토너들의 도전과 가슴 벅찬 여정을 그린 이야기. 극적인 레이스로 우승을 차지한 서윤복(임시완), 그를 최고의 선수로 지도하는 손기정(하정우), 서윤복을 위해 36살의 늦은 나이에도 대회에 참여한 남승룡(배성우)의 이야기가 뭉클한 감동을 전하는 작품이다.

“한마디로 세 사람 모두 흙수저죠. 가난한 현실에서 달리기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꿈을 실현해가는 과정을 담고 싶었어요.”

그는 대본을 받고 ‘거짓말 같은 실화’에 매료됐다. 각색할 때 젊은 관객이 세 인물과 교감하고 그들의 열정을 느낄수 있도록 만드는데 주력했다. 극화를 최소화하고 사실 전달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서윤복이 달리는 도중 셰퍼드 개가 튀어나오는 장면도 실화였다. 너무 극적이라 누군가는 빼자고 설득했지만, 그는 뚝심있게 밀어부쳤다.

임시완/롯데엔터테인먼트

임시완, ‘미생’ 보고 물건이 나왔구나 생각

“‘미생’ 때 임시완을 처음 봤는데, 물건이 하나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변화의 보폭이 넓고 표현이 다양하다는 것은 ‘불한당’을 보고 확실하게 느꼈어요. 대본을 읽고 임시완이 바로 떠올랐는데, 체격도 비슷해서 정말 다행이었죠.”

임시완은 촬영장에서도 화제였다. 닭가슴살만 먹고 체지방률 6%를 찍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남자 스태프들이 임시완을 한 장면이라도 더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강 감독은 “임시완은 카메라로 찍고 싶은 욕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배우”라고 칭찬했다.

하정우, 연기에 디테일이 숨어있어

그는 대본을 읽고 손기정 역에 하정우를 떠올렸다. 외형도 닮은 부분이 많았다. 예전부터 같이 작품하자는 약속을 이제야 지켰다.

“하정우는 모니터로 볼 때와 스크린으로 볼때가 다르더군요. 편집실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연기가 있었어요. 큰 화면으로 보니까 보이더라고요. 촬영장에서 ‘2% 부족한데 리테이크 갈까’하고 고민한 적이 있었죠. 막상 극장에서 보니까 너무 훌륭하게 잘 했더라고요.”

강제규 감독/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후반부 레이스에 모든 것을 걸었다

결국 ‘1947 보스톤’의 핵심은 서윤복이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는 순간이다. 이 레이스를 얼마나 박진감 넘치게 담아내느냐가 영화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나리오 받고 제1순위로 생각한 것이 마라톤 레이스였어요. 여기가 재미 없으면 영화는 망한다고 생각했죠. 목숨을 걸고 찍었어요.”

호주에서 진행한 마라톤 풀코스 로케이션은 당시 산불사태로 위기를 맞았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재가 날렸다. 바람만 불면 시커먼 연기로 뒤덮였다. 천만 다행으로 2주 동안 바람이 촬영장 반대 반향으로 불어 원하는 레이스 장면을 얻을 수 있었다.

국뽕·신파 최대한 배제

그는 감독 데뷔 이전에 충무로 최고의 시나리오 작가였다. 강우석 감독의 정치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로 백상예술대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박중훈 주연의 ‘게임의 법칙’(1994)은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그런 그가 ‘1947 보스톤’에서 가장 경계했던 것은 국뽕과 신파였다.

“작위적으로 만들면 국뽕이잖아요. 저는 최대한 실화와 팩트에 주목했죠. 스포츠영화가 주는 감동도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그의 진심이 통했을까. ‘1947 보스톤’은 추석영화 ‘빅3’ 가운데 관객 평점이 가장 높다. 개봉 첫날보다 이틀째에 더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서윤복의 달리기는 잊고 지냈던 열정에 불을 지폈다.

강제규 감독이 바랐던 것이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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