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존 카니 감독 영화 <플로라 앤 썬>을 봤다. 제목 그대로 싱글맘 플로라와 그 아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존 카니 감독 전작 <원스>와 <비긴 어게인>처럼 관계의 치유와 회복에 음악이 매개로 등장한다.
<플로라 앤 썬>에서 내가 주목한 인물은 플로라(이브 휴슨)의 온라인 기타 선생님인 제프(조셉 고든 레빗)이다. 레슨 초반 플로라는 제프에게 그가 작곡한 곡을 들려달라고 말한다.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플로라는 그 곡을 듣고는 별로라고 평한다. 그러자 제프는 “예전에 누군가 그렇게 말해줬다면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았을 거”라 답한다.
정말 그럴까? 과거의 어느 날, 누군가 제프에게 “네 음악 별로야”라고 말했다고 한들 제프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과거의 제프가 그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느냐는 말이다.
인간이란 알다가도 모를 존재다.
수많은 경험칙이 쌓여 겪어보기 전에 결과를 예상하는 일이 있지만, 예상이 빗나가는 일도 많고, 예상되는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기도 한다. 속된 말로,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고 할까. 흔히 말하는 ‘귀가 얇은 사람’조차 남이 아무리 옆에서 뭐라고 해봐야 듣지 않을 때가 분명 있다.
언젠가 사는 게 참 고되다 느낀 어느 날, 전문의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학교 다닐 때, 네가 공부하라고 깨워줄 때 열심히 공부할 걸 그랬어. 그랬으면 내가 지금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몰라.”
친구가 답했다. “아니, 너는 그때도 책을 좋아했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친구 말처럼, 어떤 상황에 처했든 어떤 선택을 했든 나는 돌고 돌아 지금처럼 북에디터가 됐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때 이거 말고 저걸 할 걸 그랬어.’ ‘어릴 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걸.’ 종종 하는 생각이다.
삶에서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A와 B, 혹은 C. 그 옛날 내가 A 대신 B를 했다면 내 삶이 많이 달라졌을까? 삶에서 과거에 대한 가정은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는 결국 가봐야 안다. 누가 뭐래도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결국 내가 직접 가봐야 안다. 영화 속에서 자신을 ‘실패한 뮤지션’이라고 말하며 멋쩍게 웃는 제프 얼굴에서는 묘한 편안함이 엿보였다. 그것은 바로 내 길을 가본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삶의 수용이 아닐까.
불황은 계속되고 출판 시장도 어렵다 아우성이다. 나 역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불안하다. 창업하고 이제 고작 책 한 권 냈을 뿐인데 사방에서 우울한 소식만 들려온다.
나는 가끔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이 들 때 이 영화가 생각날 것 같다. 언젠가 제프와 비슷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부디 실패한 출판인이라고 덧붙이지 않길 바랄뿐.
|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북에디터 정선영 인스타그램 dodose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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