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부산 박승환 기자] "순간을 하나하나 다 남기고 싶다"
LG 트윈스는 지난 3일 무려 29년 묵은 '한(恨)'을 제대로 풀었다. LG의 경기가 없는 가운데, 우승 경쟁을 펼치던 KT 위즈와 NC 다이노스가 모두 패하면서,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매직넘버'가 모두 소멸됐다. 지난 1994년 이후 구단 역대 세 번째 정규시즌 우승이었다.
최고의 결과 속에서 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LG 선수단 '손'으로 직접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짓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난 3일 LG의 경기가 없었던 까닭. LG 선수단은 부산 롯데 자이언츠 원정을 위해 이동 중이던 버스 안에서 우승을 통보(?)받았다. 감격적인 순간을 의도치 않게 그라운드가 아닌 버스에서 느꼈던 것이다.
무려 29년 만의 정규시즌 우승이라는 순간을 직접 만들지는 못했지만, LG 선수단은 4일 부산에서 하루 늦게나마 기쁨을 만끽했다. LG는 롯데와 '엘롯라시코' 라이벌 맞대결이 끝난 뒤 팬들과 함께 우승 모자와 티셔츠를 착용하고 세리머니를 펼쳤는데, 이날 엎치락뒤치락을 거듭한 끝에 7-6의 짜릿한 역전승을 손에 넣으면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삼킬 수 있었다.
모든 선수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만들어낸 우승이지만, 염경엽 감독은 임찬규에 대한 칭찬을 빼놓지 않았다. 임찬규는 올 시즌 LG의 '핵심'과도 같았다. 임찬규는 지난해 6승 11패 평균자책점 5.04으로 부진하면서 FA를 한 해 미루기로 결정했는데, 올해 제대로 부활했다.
임찬규는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했지만, 어린 선발 후보들이 부진 등으로 전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공백이 생긴 자리를 완벽하게 메워냈다. 임찬규는 4일 경기 전까지 28경기에 등판해 12승 3패 1홀드 평균자책점 3.60을 기록했고, LG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LG가 가장 힘들어질 수 있는 순간에 등장한 '난세의 영웅'과도 같았다.
염경엽 감독은 4일 사직 롯데전에 앞서 한 해를 돌아보면서 "돌이켜 보면 4월 말부터 5월에 들어서는 시점이 조마조마했다. (김)윤식이, (이)민호, (강)효종이가 안 되면서 세 명이 빠지기 시작하니, 두 갈래 길이 보이더라. 여기서 못 버티면 올 시즌 잘못하면 4~5위에서 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 문을 열었다.
계속해서 염경엽 감독은 "그 시기에도 내가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이다. 더그아웃에서 지고 있어도 '원 찬스야! 뒤집을 수 있어'라고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목표 의식이 뚜렷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에 (임)찬규가 살아났다. 찬규와 플럿코가 나가면 승부가 됐었다"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사령탑이 콕 집어 칭찬했던 임찬규의 우승 소감은 어떨까. 그는 "(버스에서 내려오면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며 "야구는 일부러 보지 않았다. 속마음으로는 오늘(4일) 하고 싶었다. '한 팀은 이기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박수를 치더라. 그래서 '우승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의외로 덤덤하게 답했다.
일찍 우승이 결정된 것은 좋지만, 역시 타의로 결정된 우승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임찬규는 "야구장에서 우승을 했다면, 감정이 많이 올라왔을 것이다. 1회부터 9회까지 경기를 하다 보면 분위기가 무르익기 때문이다. 그런데 휴게소에서 다들 '축하한다'고 했다. 실감이 나지 않더라. 아직 한국시리즈가 남았기 때문에 오히려 묵묵해졌던 것 같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임찬규는 어린 시절부터 '엘린이'였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2002년 LG가 우승에 도전하는 장면을 TV로 빠짐없이 지켜봤고, LG가 마해영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하는 순간에는 눈물까지 쏟아냈다. 급기야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엘린이'가 LG의 중심선수로 성장해 29년 만의 우승을 일궈낸 기분은 어떨까.
그는 '한국시리즈에서 선발로 던지면 어떨 것 같나'라는 질문에 "'신난다'는 느낌이 아니다. 엄청 묵묵해 지더라. 왜냐하면 2002년 초등학교 3학년 대구에서 삼성 라이온즈와 한국시리즈를 봤었기 때문이다. 당시 선수들 이름 하나까지 다 기억이 나는데, 29년 만에 정규리그 1등을 하고 한국시리즈에 간다고 하니 안 믿긴다"고 말했다.
임찬규는 "한국시리즈 진출 자체가 낭만인 것 같다. 이보다 더한 드라마가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잘 끝나려면 잘 던져야 한다. '살면서 이보다 더 극한의 상황이 올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 구씩 던질 때마다 그 장면을 남겨두고 싶다.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할 것이다. 무조건 이겨야겠지만, 그 순간을 하나하나 다 남기고 싶다"고 강조했다.
과거 선배들을 보고 자란 임찬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야구선수의 꿈을 키워나갈 '꿈나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을까. 그는 "그 친구가 커서 LG에 입단할 때까지 우승이 없으면 안 된다"고 너스레를 떨며 "더 자주 우승도 하고 반지도 끼는 좋은 팀으로 기억이 됐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물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임찬규는 남아 있는 경기부터 잘 마칠 생각이다. 그는 "두 경기 (등판이) 남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규정 이닝까지는 11⅓이닝이 남았다. 어차피 시즌이 끝나면 2~3주 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잘 던지고 마무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부산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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