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정선영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좀 기타를 편하게 쳤으면 좋겠어요. 그냥 막. 긴장하지 말고요.”
최근 기타 선생님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기타 선생님 말은 나로서는 그 맥락이 아리송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맨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뜻이지?’ 싶었다. 나는 웬만해선 긴장이란 걸 안 하는 사람인데 말이다.
다만 기타를 배우면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양손에 대한 짜증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동영상을 보내왔다.
18개월 된 아기가 제 몸집 두 배가 넘는 세워진 기타 앞에 서서 마구 줄을 튕겨댔다. 매우 힘차고 자신 있고 명징한 소리가 났다. 영상 마지막에 아기가 카메라를 응시하는데 마치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모 나 좀 봐. 잘하지?”
사실 몇 달 전, 나는 이 조카에게 자장가 ‘섬집아기’를 들려주겠다고 큰소리쳤다. 18개월 아기가 그 말을 알아들을 리 없고, 혼자만의 약속이었다. 그 후 악보를 구하고, 연주 영상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아무리 쉬운 버전도 지금 내 실력으로는 무리였다.
할 수 없이 그 다음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는 ‘꿩 대신 닭’이라고 요즘 연습 중인 두 곡, 영화 <머니볼>의 OST ‘더 쇼’와 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 중 몇 마디라도 들려주리라 결심했다.
차 조수석에 기타와 비트를 담은 아이패드를 싣고 친구네 집으로 출발했다. 아주 잠깐 평소보다 기타를 조금 더 잘 칠 거 같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막상 친구 집에 도착해 아기 얼굴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이것이다. ‘아... 제발 울리지만 말자.’
튜닝을 하는 내내 손가락이 떨렸다. 아기가 울까 봐. 그 순간 아기는 기분 좋게 제 엄마와 잘 놀고 있었다. 그 틈을 타 나는 연주를 한다는 말도 없이 얼렁뚱땅 기타를 켜기 시작했다. 불안불안한 두 손은 몇 마디 연주에도 박자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난리였다.
아기는 아주 잠깐 관심을 보여 내 쪽을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나는 내가 준비한 연주를 들려줬다. 드디어 짧고 외로운 연주가 끝나고 박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다행히 아기는 울지 않았다.
연주가 끝난 나는 조용히 소파에서 내려와 조카 장난감 기타 옆에 내 기타를 놓았다. “그래, 땡땡아. 그냥 너 이거 갖고 놀아.”
친구가 보내준 영상처럼 기타 줄을 몇 번 긁어대자 아기도 따라 했다. 영상으로 볼 때보다 더 거침없고 자유로웠다.
문득 깨달았다. 기타 선생님이 말한 ‘편하게 치라’는 모습이 바로 이렇지 아닐까. 내 기타 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맥없이 흘러갈 때가 있는데, 나는 그 원인이 자신감 부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자신감이란 실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실력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 여겼는데,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기타를 처음 접하는 조카는 애초에 ‘잘한다’거나 ‘못한다’는 개념이 없다. 그러니 거침없고 편할 수밖에. 나는 오늘 18개월짜리 아기를 보고 ‘편하게’, ‘막’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 조금 알 게 된 것 같다. 내가 졌다, 꼬맹이.
정선영
|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북에디터 정선영 인스타그램 dodoseo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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