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잘하겠습니다.”
지난 1월29일 인천국제공항. NC 다이노스 베테랑 박석민(38)이 검게 그을린 얼굴로 나타났다. 한 눈에 봐도 살이 쏙 빠진 모습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본래 이 시기엔 살이 빠진다”라고 했지만, 강력한 부활의지가 느껴졌다.
박석민은 2021년부터 추락했다. 코로나19 술판파동에 각종 잔부상, 운동능력 저하에 따른 각종 수치 저하까지. NC와의 FA 3년 34억원 계약이 끝나자 올 시즌 단 5000만원에 계약했다. 작년 연봉 7억원에서 무려 6억5000만원(약 93%) 삭감됐다.
이미 FA 계약으로만 130억원(2015-2016 4년 96억원)을 받았다. FA 재벌 11위. 그러나 박석민에겐 더 이상 돈이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자존심 회복이 중요했다. 그리고 지난 2년간의 부진으로 NC 팬들에 대한 미안함을 갚고 싶었다. 1월 신년회에도 불참하고 필리핀 개인훈련을 떠나 독하게 훈련했다.
인터뷰 요청은 줄기차게, 정중히 고사했다. 자신이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며, 잘 하겠다는 공항에서의 한 마디가 그에게 들은 마지막 공식 코멘트였다. 애리조나 투손 스프링캠프에 방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박석민의 진심은 충분히 느껴졌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치고 받으며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을 봤다. 새까맣게 어린 후배들보다 더 많이 훈련한 것으로 보였다. 강인권 감독은 최고참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투손에서부터 개막 주전 3루수로 낙점했다.
베테랑에게 먼저 기회를 줘야 팀 케미스트리가 잡힌다는 논리가 아니었다. 강인권 감독은 박석민의 준비 자세를 실제로 높게 평가했다. 그 정도라면 먼저 기회를 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박석민은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4월19일 잠실 LG전이 비극이었다. 타격 후 1루에 전력질주하다 햄스트링을 다쳤다. 그날까지 타율 0.250 1홈런 6타점으로 좋은 출발은 아니었지만, 최악도 아니었다. 1달 반 동안 재활한 뒤 6월에 돌아왔으나 더 이상 안정적인 기회 제공은 힘들었다. 그 사이 서호철이 완전히 치고 올라오며 주전 3루수를 꿰찼다.
박석민은 7월25일 KIA전 이후 발가락 부상으로 더 이상 뛰지 못했다. 2군에 내려갔지만, 이 정도 커리어의 선수가 재활해 퓨처스리그에 나가는 건 큰 의미도 없었다. 이 시기에 은퇴에 대한 결단을 내리고 구단에도 넌지시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NC 관계자는 “박석민이 아들과 함께 뛰고 싶어 했는데…”라고 한 적이 있었다. 그의 아들 박준현은 천안북일고 1학년 투수다. 박석민이 내년부터 3년을 더 버티고 아들이 프로 1군에 올라와야 가능한 일이지만,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건 당연한 마음이다.
비록 그렇게 되지 못했지만, 박석민은 충분히 좋은 야구인생을 살았다.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해 삼성 왕조 주역으로 맹활약했다. 비록 최정(SSG)에게 가리긴 했지만, 최정 못지 않은 레전드 3루수다.
통산 1697경기서 5363타수 1537안타 타율 0.287 269홈런 1041타점 882득점 장타율 0.491 출루율 0.402 OPS 0.893. 마무리까지 잘 하고 떠나면 가장 좋지만, 현실적으로 박수 칠 때 떠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정도 했으면 떠날 때 박수 쳐줘도 충분하다.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