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이하나, 3년간 77번 출전 최고 성적은 3위
첫 우승…일본인 캐디 오열, 선수가 위로
“너무 많이 울어서 미안해요.”
그야말로 폭풍 눈물이었다. 탄노 케이스케는 일본 여자프로골프 대회에서 첫 우승한 한국 선수 이하나(22)의 캐디. 그린에서 터진 그의 울음과 다음 날 소셜미디어에 올린 그의 글이 일본에서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
이하나와 탄노는 지난달 29일 히사코 히구치 미쓰비시전기 레이디스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일궜다.
이하나는 일본 1부 투어 3년 동안 77번 대회에 나갔으나 예선 탈락만 26번. 3위 한 번이 고작. 늘 바닥에 가까운 성적이었다. 한국에서 건너 간 스물을 갓 넘긴 이하나의 고전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탄노는 가슴이 쓰라렸을 것이다. 보고 듣고 겪는 것 모두 낯설고 서먹서먹한 남의 나라. 예선을 넘지 못해 대회 중간에 짐을 싸 떠나기를 되풀이 해 온 이하나의 아픈 심정을 탄노보다 더 깊이 헤아린 사람이 누가 있을까?
■ “선수의 위로를 받은 캐디”
역전에다 연장 끝 우승을 했음에도 이하나는 담담했다. 울지 않았다. 두 팔을 올려 기쁨을 나타냈을 뿐, 바로 그린 가장자리로 향했다. 탄노는 이미 거기서 몸을 굽힌 채 흐느끼고 있었다. 이하나는 그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우승 선수는 울지 않는데 캐디가 통곡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이하나는 계속 울고 있는 탄노 대신 깃대를 직접 들고 가 홀에 다시 꼽았다. 캐디와 선수가 뒤바뀌었다. 어느 나라 골프 대회에서도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한국에서도 생중계를 본 시청자들은 탄노의 울음을 봤을 것이다.
“우승 직후 통곡하는 캐디. 선수가 위로하는 장면에 관중들 감동 ‘덩달아 함께 울었다’.” 일본 언론의 기사 제목이다.
다음날 탄노는 소셜미디어에 트로피를 이하나와 함께 들고 있는 사진과 글을 올렸다.
“이하나 선수와는 지난해부터 함께 하기 시작했다. 이번 우승이 이 선수의 정규 투어 첫 우승. 나도 캐디로서 첫 우승이다. 그동안 생각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아 힘든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연습을 거듭하는 모습을 계속 봐왔다. 마지막 퍼트를 했을 때 온갖 생각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이런 멋진 경험을 하게 해준 이 선수 정말 고마워요. ‘하나 짱’ 정말 축하합니다”라고 했다. 마지막엔 “너무 많이 울어서 미안해요”라며 마무리했다. 그는 단순한 기술 도우미가 아니었다. 이하나의 고생을 공유하며 용기를 준 조언자였다.
탄노의 글에 많은 일본인들이 눈물의 댓글로 화답했다. “정말 멋진 장면을 보여줘서 고맙습니다” “정말로 축하합니다! 너무 많이 울었어요” “같이 울지 않을 수 없었어요!” “열심히 하는 사람의 눈물은 감동입니다” “남자가 우는 모습, 멋있었어요.”
이하나는 중국에서 태어나 12살 때 한국으로 건너와 중·고교를 다녔다. 중학 때 골프를 시작해 전국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고교 졸업 뒤 부모가 이사한 일본에서 프로에 뛰어들었다. 쉽지 않았다. 지난해 1부 순위 54위. 겨우 올해 일부 대회의 참가 자격을 얻었다. 상반기 3위를 한 덕분에 대회를 계속 참가할 수 있었다. 이하나는 중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녀 영어를 잘한다고 한다. 한국어에다 중국어, 일본어까지 4개 국어를 하는 선수로 알려지고 있다. 일본에서 21승을 거둔 이보미 선수처럼 되는 것이 꿈이다.
이보미 외에도 올해만 두 번 우승한 신지애와 안선주, 김하늘 등 일본은 한국 선수들이 화려한 성적을 거둔 곳. 이제는 이지희, 전미정, 황아름, 이나리, 이민영, 배선우 등 8명뿐이다. 일본여자프로골프협회의 규정 탓에 진입이 어려워졌기도 했지만 대회도 상금도 많아진 한국을 떠나려는 선수들이 드물기 때문. 물론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굳이 고생하지 않으려는 풍토 탓이기도 하다.
■ 한국 선수들이 본 받아야 할 이지희 등
그러나 어린 이하나를 뺀 나머지 7명은 이른 은퇴가 대세인 한국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다른 나라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래 선수로 남아 있는 것은 남다른 의지와 열정,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진정으로 골프를 즐기지 않으면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직업으로 스포츠를 스스로 선택한 선수들이 가져야 할 당연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25년 동안 23번 우승한 이지희는 44세. 여전히 1,2부를 오가며 대회를 뛴다. 25승 전미정 41세. 5승 황아름 36세. 28승 신지애 35세. 2승 이나리 35세. 6승 이민영 31세. 2승 배선우 29세. 이들은 이전보다는 우승 회수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1부에서 만만찮은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전미정은 올해 10위 안에 두 번 들었다.
9월, 이지희가 2부 대회에서 생애 첫 우승을 했을 때 일본 언론은 “전설의 부활. 압권의 첫 우승”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불혹을 넘겨 고민이 많은 나날들. 20년 연속 유지해 온 1부 출전권을 지난해 잃었다...44세가 된 올해는 골프로서의 삶을 건 시즌이었다”고 적었다.
23승의 전설은 “23년 만의 2부 대회 출전에 망설임이 없었다”고 한다. 골프 1,2부는 상금 등 모든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어느 종목의 선수도 그러기 쉽지 않을 것이다. 용기를 뛰어넘어 아름다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지희는 “젊을 때와는 달리 정말로 자신이 없어졌다. 다시 정신을 차려 자격 대회에 도전했지만 결과를 얻지 못했다. 어렸을 때와 다르게 어떻게 문제를 극복할 지에 대한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속사 사장이 ‘조금이라도 선수를 더 계속할 생각이라면 지원해 주겠다. 잘 생각해서 결정해 달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시합을 찾아 돌아 온” 이지희는 “이번 우승을 헛되게 할 수 없다.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했다”며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 그 나이에 의지를 갖는 것도 어렵지만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달리 인간승리가 아니다.
이하나의 심한 고생 끝 첫 우승과 캐디의 통곡. 40대 중반 이지희의 다함없는 도전. 감동을 준다. 스포츠의 가치요 멋이다.
◆손태규 교수는 현재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특임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스포츠, 특히 미국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 매주 마이데일리를 통해 해박한 지식을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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