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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한신 타이거즈가 37년 동안의 설움을 마침내 설욕했다. 무려 38년 만에 구단 역대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오사카 시내는 그야말로 들끓었다.
한신은 5일(이하 한국시각) 일본 오사카의 교세라돔에서 열린 2023 일본프로야구 일본시리즈(JS) 오릭스 버팔로스와 원정 맞대결에서 7-1로 승리, 무려 38년 만에 구단 역대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한신은 지난 4일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는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 야마모토 요시노부(오릭스)를 상대로 9이닝 동안 9개의 안타를 뽑아내며 분전했다. 하지만 매 순간 결정적인 한 방이 터지지 않는 등 14삼진을 당하면서 고전했고, 한신과 오릭스는 3승 3패를 기록하며 7차전에서 승부를 가리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한신이 웃었다.
▲ 선발 라인업
한신 : 치카모토 코지(중견수)-나카노 타쿠무(2루수)-모리시타 쇼타(우익수)-오야마 유스케(1루수)-쉘든 노이지(좌익수)-하라구치 후미히로(지ㅏ명타자)-사토 테루아키(3루수)-키나미 세이야(유격수)-사카모토 세이시로(포수), 선발 투수 아오야기 코요(8승 6패 ERA 4.57)
오릭스 : 나가카와 케이타(중견수)-무네 유마(3루수)-쿠레바야시 코타로(유격수)-모리 토모야(포수)-톤구 유마(포수)-마윈 곤잘레스(2루수)-스기모토 유타로(지명타자)-노구치 토모야(좌익수)-후쿠다 슈헤이(우익수), 선발 투수 미야기 히로야(10승 4패 ERA 2.27)
# 팽팽했던 경기 초반의 흐름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1승만을 남겨둔 가운데 양 팀의 경기 초반 흐름은 매우 팽팽했다. '에이스' 야마모토가 1차전에서 최악의 투구를 펼친 가운데 2차전 선발로 등판했던 미야기는 1회 시작부터 선두타자 치카모토에게 안타를 맞은 뒤 후속타자에게 희생번트를 허용하는 등 실점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후속 타자들을 모두 범타로 돌려세우며 무실점 스타트를 끊었다.
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일본 대표팀의 우승에 힘을 보태고, 야마모토가 메이저리그로 떠나면 오릭스의 1선발을 맡을 미야기의 투구는 탄탄했다. 미야기는 2회 3루수 땅볼 2개와 삼진 1개를 곁들이며 삼자범퇴를 기록했고, 3회초 수비에서는 두 개의 삼진을 곁들이며 한신 타선을 꽁꽁 묶어나갔다.
지난 2년 연속 13승을 수확했지만, 올해는 크게 부진했던 야오야기가 7차전 선발로 출전한 가운데, 한신도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아오야기 또한 1회부터 안타를 맞으면서 경기를 출발했지만, 실점 없이 오릭스 타선을 막아내며 기분 좋은 스타트를 끊었다. 아오야기는 2회 1루수 땅볼 2개와 삼진으로 첫 삼자범퇴를 마크했고, 3회 안타와 볼넷을 내주며 크게 흔들렸지만, 이번에도 실점은 없었다.
# 무너진 균형, 오릭스 마운드를 폭격한 한신
팽팽한 경기의 균열이 생긴 것은 4회였다. 한신은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모리시타가 안타를 쳐 포문을 열더니 후속타자 오야마가 몸에 맞는 볼을 얻어내며 1, 2루 득점권 찬스를 손에 넣었다. 여기서 노이지가 미야기의 4구째 몸쪽 낮게 떨어지는 124km 체인지업을 힘껏 퍼올렸고, 좌측 담장을 넘어가는 선제 스리런포를 폭발시켰다.
균형이 무너진 뒤 한신은 오릭스 마운드를 실컷 두들겼다. 한신은 5회 또한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사카모토가 안타를 쳐 물꼬를 튼 후 치카모토가 연속안타를 터뜨리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이후 나가노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면서 찬스가 무산되는 듯했고, 오릭스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미야기를 내리고 히가 모토키를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여기서부터 한신의 타선이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신은 4회 찬스를 만들었던 모리시타가 바뀐 투수 히가를 상대로 좌익수 방면에 1타점 2루타를 쳐 4-0으로 달아났다. 흐름을 타기 시작한 한신은 이어지는 득점권 찬스에서 오야마가 유격수 방면에 내야 안타를 쳐냈고,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균형을 무너뜨리는 한 방을 터뜨렸던 노이지가 승기를 잡는 적시타를 뽑아냈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뒤 잠잠하던 경기는 경기 막판 다시 불타올랐다. 한신은 9회초 선두타자 치카모토가 1루수 방면에 내야 안타를 쳐 마지막 기회를 잡았다. 당초 땅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던 타구였는데, 오릭스 투수 아즈마 유헤이의 베이스 커버가 늦어지면서 행운이 따랐다. 이어 한신은 나카노의 진루타로 만들어진 1사 2루에서 모리시타가 승기에 쐐기를 박는 적시타를 터뜨리면서 7-0까지 간격을 벌렸다.
하지만 오릭스도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오릭스는 9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톤구가 경기를 매듭짓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이와자키 스구루의 초구 142km 직구를 공략해 좌월 솔로홈런을 터뜨렸다. 그리고 후속타자 곤잘레스까지 안타를 쳐냈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경기를 뒤집는 것은 역부족. 이와자키가 스기모토를 좌익수 뜬공으로 돌려세우면서 마침내 한신이 우승을 차지하게 됐다.
# 한국 WBC 대표팀에 질 때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우승
물론 모든 것은 뚜껑을 열어봐야 하지만, 올해 한신이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은 썩 매끄럽지 못했다. 한신은 연습경기에서 단 1승도 손에 넣지 못하며 허덕였고, 오릭스 1.5군에게 무릎을 꿇은 한국 WBC 대표팀을 상대로 1군 정예멤버를 모두 투입하고도 4-7로 패하는 등 시범경기 개막에 앞서 분위기가 바닥을 찍었다. 특히 시범경기에서도 8승 9패로 양대 리그 8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정규시즌이 시작된 후 한신은 달라졌다.
2008년 이후 15년 만에 한신의 유니폼을 입은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이 이끈 한신은 개막전에서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를 무너뜨리는 등 15년 만에 4연승을 질주하며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그리고 5월 7연승을 질주하는 등 무려 19승을 쓸어담았고, 교류전에 앞서 승패마진 +17승을 기록하며 센트럴리그 선두로 '폭주'하기 시작했다.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신은 교류전에서 7승 1무 10패로 10위에 머무르며 주춤하더니, 교류전이 끝난 뒤 요코하마 DeNA와 맞대결에서 충격의 3연패를 당하면서 2위로 내려앉았다. 이후 다시 1위로 복귀하는 듯했지만, 올스타 브레이크가 종료된 후에는 히로시마에게 선두 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한신은 다시 힘을 내기 시작했고, 무려 11연승을 질주하면서 지난 9월 14일, 2005년 이후 18년 만에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 정규시즌 우승에 이어 일본시리즈까지. 도톤보리에 배치된 경찰들
한신이 지난 9월 14일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을 때 오사카의 최대 번화가인 도톤보리에는 '경찰'들이 배치됐다. 도톤보리 강물에 뛰어드는 등의 과격한 행위를 막아서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이 배치 됐음에도 불구하고 토돈보리 강물에 뛰어드는 한신 팬들을 막아서지 못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일본 'NHK 오사카'는 "한신이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경우 경찰 1300명을 미나미 도톤보리를 중심으로 경계하기로 했다. 오릭스가 일본시리즈 우승을 하면 100여 명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날 경기 중반부터 한신 쪽으로 승기가 기울자 도톤보리에는 수많은 경찰들이 급히 배치되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미나미 도톤보리 다리를 비롯해 강가 주변에서 시민들이 과격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막아섰다.
한신이 우승을 차지하는 순간. 도톤보리 일대 팬들은 멈춰서 한신이 우승하는 순간을 지켜보며 기쁨을 드러냈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실제로 1300여 명의 경찰이 배치됐음에도 불구, 도톤보리 강가로 뛰어드는 팬들을 모두 막아설 수는 없었다.
이날 교세라돔에는 3만 3405명의 팬들이 몰렸는데, 한신 팬들이 절반 이상에 달했다. 게다가 이날은 고시엔구장도 개장했는데, 1만 2424명의 팬이 찾았고, '닛칸 스포츠'는 오사카 우메다를 비롯한 오사카 시내 4곳에 '호외' 3만부를 배포할 정도로 오사카 시내는 그야말로 한신의 우승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 감격적인 우승과 함께 감동까지 뒤따랐던 38년 만의 우승
한신은 2005년 이후 18년 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는데, 일본시리즈 우승은 지난 1985년 이후 무려 38년 만이었다. 특히 오카다 감독은 현역 시절 한신의 첫 번째 우승을 맛본데 이어 사령탑으로 복귀해 구단 역대 두 번째 우승까지 이끌어내면서 일본프로야구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한신의 감격적인 우승에는 감동도 뒤따랐다. 바로 요코타 신타로에 대한 이야기. 요코타는 지난 '뇌종양'으로 인해 지난 2019년 현역 유니폼을 벗었는데, 올해 7월 세상을 떠나게 됐다. 한신 선수단은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요코타의 유니폼을 걸어두고 경기를 치른 것은 물론 우승을 차지한 이후에도 유니폼을 들고 나와 기쁨을 만끽했다. 38년 만의 우승의 기쁨을 세상을 떠난 동료와도 함께 나누며 감동까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는 역대 두 번째로 오랜 기간 월드시리즈(WS) 우승을 맛보지 못했던 텍사스 레인저스, 일본도 히로시마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우승을 못하던 한신이 최정상에 올라섰다. 그리고 이제 KBO리그에서는 롯데 자이언츠에 이은 2위 기록을 보유 중인 LG 트윈스가 우승에 도전한다. LG까지 우승을 하게 될 경우 또 하나의 스토리가 탄생할 전망이다.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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