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여행작가 신양란] 로마는 불가사의한 도시다. 거의 2000년 전에 세워진 판테온이 여전히 원형을 유지하며 서 있고, 그 이전에 세워진 콜로세움은 오늘도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런 오래된 문화유산이 길을 걷다 보면 불쑥불쑥 나타나는 것도 불가사의하지만, 나를 더욱 의아하게 만드는 것은 보석상자 같은 그 도시를 현대인이 너무 형편없이 관리한다는 점이다.
대중교통 운행이 제멋대로라 골탕을 먹은 것은 운 나쁘게도 그 무렵에 로마를 방문한 우리 부부만의 사정일 수 있지만, 유럽에서 로마처럼 청소가 안 되어 지저분한 도시는 달리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소매치기야 이제는 유럽 전체 문제로 확산되었다. 그 와중에도 로마 소매치기는 그 명성이 아직도 자자하다고 할 수 있다.
아, 로마의 소매치기라면 내게도 몹시 분통이 터지는 기억이 있다.
지난 2007년 여름에 우리 부부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서유럽을 한 달 가까이 여행한 적이 있다. 런던으로 들어가 뮌헨, 프라하, 빈, 베네치아, 로마를 여행한 다음, 파리와 상하이를 거쳐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그때 우리는 어린 자식에게 멋진 추억을 남겨주겠다고 참 부지런히도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다.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며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래서 그것을 저장하기 위한 무거운 노트북을 메고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는 외장하드에 따로 저장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을 때라서 노트북이 유일한 저장 수단이었다. 그 유럽 여행의 모든 기록이 들어 있는 노트북을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소매치기당했다. 자식들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멋진 추억은 물 건너가 버렸다.
로마에서 소매치기당한 일이야 특별한 일도 아니고, 또 당한 사람 잘못이니 내놓고 떠들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오히려 나도 남들처럼 소매치기당하는 경험을 해봤노라고 설레발이나 칠 따름이지. 그래도 그 후로 테르미니역에 갈 때마다 그 일이 떠올라 뜨악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번에 로마에서 피렌체로 이동하는 날에도, 로마는 내게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던져 주었다.
도시 간 이동이니 커다란 여행 가방을 끌고 테르미니역으로 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상하게도 엘리베이터가 눈에 잘 띄지를 않는다. 엘리베이터가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어디에 숨겨둔 것인지 찾기가 쉽지 않다. 테르미니역이야말로 로마에서 여행자가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니 무엇보다도 엘리베이터가 많이 필요할텐데 여행자를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
할 수 없이 에스컬레이터로 오르내려야 하는데, 문제는 예전에 베를린의 테겔공항 에스컬레이터에서 여행 가방을 안고 굴러떨어진 일이 내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부득이 남편이 가방 두 개를 끌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곤 한다. 그게 남들에게도 아슬아슬해 보인다.
테르미니역 지하철 플랫폼에서 기차역 쪽으로 이동하려고 에스컬레이터 앞에 섰을 때, 한 여인이 우리에게 다가와 “리프트(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그러느냐?”고 물었다.
난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알려주는 그 여인이 참 고마웠다. 로마에서 그런 친절한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우니까. 그래서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는 거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친절한 여인을 따라가려고 남편을 잡아끄는데, 그 때 옆에서 그 장면을 본 다른 중년 여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No!”라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가볍게 고개를 젓는 게 아닌가. 따라가면 안 된다는 뜻으로 보였다. 뒤늦게 ‘아차!’ 하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마도 그 여인은 에스컬레이터 위치를 알려준다며 여행자를 유인해 금품을 터는 일을 하는 듯했다. 로마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위험을 알고 있는 듯했다. 어리바리한 우리 부부는 그녀 타깃이 되어 속절없이 당할 뻔했는데, 운 좋게 말려주는 사람이 있어 위기를 면했다.
우리가 제안을 거부하고 에스컬레이터에 오르자 그 여인은 다른 타깃을 찾아 이동했다. 로마 테르미니역에서 떨떠름한 기억 하나를 추가한 우리 부부는 고개를 흔들며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여행작가 신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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