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더 죽기 살기로 하고 있어요"
2023시즌에 앞서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무려 170억원을 투자한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해 초 KBO리그에 돌풍을 일으켰다. 4월을 단독 1위로 마치더니, 5월까지 상위권 경쟁을 펼치며 좋은 흐름을 이어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6월부터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 후반기에는 래리 서튼 감독이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는 등 각종 악재 속에서 68승 76패 승률 0.472로 7위에 머물렀다.
롯데가 지난해 급격하게 추락한 가장 큰 배경은 부상이었다. 6월부터 노진혁과 정훈 등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거 이탈했던 까닭. 이는 지난해뿐만이 아니었다. 롯데는 2022시즌 또한 4월을 1위로 마쳤는데, 5월부터 코로나19 확진자를 비롯한 부상자들이 쏟아지면서, 시즌 초반의 좋은 흐름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2년 연속 '부상 악령'에 시달렸는데, 올해는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큰 악재를 맞았다.
롯데는 지난 9일 시범경기 개막에 앞서 올해 외야의 한 자리를 맡아줄 후보였던 김민석이 수비 훈련 과정에서 내복사근이 부분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지난 10일에는 '강정호스쿨'까지 다녀오며 연습경기 내내 물오른 타격감을 뽐내고 있던 한동희도 내복사근이 파열되는 날벼락을 맞았다. 김민석의 경우 한 달 정도 이탈이 불가피하고, 한동희 또한 4~6주 정도의 재활 기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개막전을 앞두고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한 것은 분명 큰 악재다. 그러나 롯데의 고민은 예상보다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이유는 고승민의 존재 덕분이다. 고승민은 지난해 마무리캠프를 시작으로 미국 괌-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를 통해 아마추어 시절의 주 포지션이었던 2루수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썼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은 안치홍이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되면서, 2루 뎁스가 눈에 띄게 얕아진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때 고승민의 입장에서 '변수'가 생겼다. 롯데가 '사인 앤드 트레이드'를 통해 김민성을 영입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스프링캠프에서 2루수 연습을 해오던 고승민은 연습경기가 시작된 후 다시 외야 글러브를 끼기 시작했다. 입지가 애매해졌던 것이었다. 여기서 고승민이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했다. 연습경기 때부터 물오른 타격감을 뽐내더니, 이 흐름을 시범경기로 이어가는데 성공했다.
김태형 감독은 김민석의 진단 결과를 전달받기 전 "고승민에게 '우선은 타격이 좋아야 어디든 나간다'는 말을 했다. 본인의 포지션이 없다고 여기저기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결국 자신만의 역할이 있다. 그에 맞게 잘 준비 해달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지금 타격감이 좋다"고 엄지를 치켜세웠고, 김민석이 부상으로 이탈하게 된 직후 고승민을 좌익수로 기용할 뜻을 드러냈다.
현재 고승민의 타격감은 절정에 달했다. 고승민은 16일 경기 종료 시점에서 시범경기 8안타 1홈런 2타점 5득점 타율 0.444 OPS 1.061로 펄펄 날아오르고 있다. 특히 5경기 밖에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타율과 최다안타 1위에 올라있다. 물론 시범경기의 성적이 정규시즌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김민석의 이탈로 인한 대체선수를 찾아야 한다는 고민은 덜어낸 셈이다.
고승민은 지난 9일 SSG 랜더스를 상대로 1안타 1타점 1득점 1볼넷 1도루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경기가 끝난 뒤 '엑스트라 훈련'을 자청했다. 당시 취재진과 만난 고승민은 "잘 맞은 타구들이 나오고, 결과 좋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은 하고 있지만, 타격감이 좋은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잘 맞든, 안 맞든 내가 노리는 구종에 방망이가 잘나가는 것 같다. (엑스트라 훈련은) 못하니까 계속 하고 있다. 아직은 완벽하지 않기에 타격 코치님들과 내 밸런스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밸런스를 찾고 있는 과정에서 좋은 타격은 이어졌다. 고승민은 이튿날(10일) 4안타를 몰아쳤고, 11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1안타, 15일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다시 한번 멀티히트를 터뜨렸다. 그리고 1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무안타로 침묵했지만, 타율과 최다안타 1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출발이 좋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김민석이 부상으로 빠지게 된 것은 고승민에게는 곧 기회다. 경쟁이 불가피한 프로의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다. 그는 "(김)민석이가 부상을 당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내게는 또 기회가 될 수 있다. 어떤 포지션으로든 경기에 나가게 된다면, 내 자리를 찾아야 한다"며 '초반에 기회가 많이 올 것 같고, 동기부여가 될 것 같다'는 말에 "맞다. 그것 때문에라도 더 죽기 살기로 하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내 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외야수를 볼 때도 우익수로만 출전했던 만큼 좌익수는 낯설지만, 이는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고승민에게는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고승민은 "작년부터 외야로 연습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준비를 하지 않았던 곳으로만 나가는 것 같다. 일단 좌익수로 타구 판단이 조금 미숙하다"고 멋쩍게 웃으면서도 "그렇기 때문에 더 수비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내야 선배님들이 다치면 또 그 자리를 메울 수 있도록 준비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군 복무로 인해 2020-2021시즌을 뛰지 못했지만, 프로 유니폼을 입은지 어느덧 5년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6년차. 고승민의 목표는 '주전'으로 한자리를 꿰차는 것이다. 그는 "2022시즌 성적이 좋았지만, 만족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풀타임으로 나가면서 만족스러운 시즌을 만들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의 좋은 타격감이 정규시즌으로 연결된다면 김민석이 부상을 털어내고 돌아오더라도, 외야의 한자리는 고승민의 몫이 될 수 있다. 고승민의 시작이 좋다.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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