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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박승환 기자]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오타니는 4일(이하 한국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홈 맞대결에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해 4타수 2안타(1홈런) 1타점 2득점으로 모처럼 7억 달러(약 9435억원)라는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오타니는 이번 겨울 메이저리그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을 뜨겁게 달군 주인공. 지난해 오른쪽 팔꿈치 인대 파열로 인해 수술대에 올랐던 오타니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에 대해 모든 관심이 집중됐다. 오타니가 부상을 당했던 직후 미국 현지 언론에서는 그래도 가치 평가에 변함이 없다는 것과 몸값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뚜껑을 열어본 뒤의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오타니는 수많은 구단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결과 다저스와 10년 7억 달러라는 전세계 프로 스포츠 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을 맺게 됐다. 물론 오타니보다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스포츠 스타는 더러 있지만, 계약 규모만 놓고 봤을 때 오타니가 신기록을 작성한 것이다. 야구적인 실력은 물론 마케팅 효과까지 오타니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일찍 시즌을 마감하고 팔꿈치 재활에 들어간 까닭에 오타니는 올해 시범경기 일정에 맞춰 타석에 들어설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들었다. 다만 시범경기에서 첫 선을 보이는 과정에서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이는 오타니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타니는 서울시리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정규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시범경기 9경기에서 11안타 2홈런 타율 0.500 OPS 1.486으로 폭주했다. 이로 인해 서울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오타니는 서울시리즈를 앞둔 스페셜게임에서는 키움 히어로즈-팀 코리아와 맞대결에서 총 5타수 무안타로 허덕였다. 하지만 정규시즌이 시작된 후 오타니는 돌변했다. 오타니는 20일 개막전에서 5타수 2안타 1타점 1도루로 승기에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21일에는 미즈하라 잇페의 통역이 불법 스포츠 도박으로 인해 다저스로부터 해고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5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으로 나쁘지 않은 흐름을 이어갔다.
오타니는 남은 시범경기 네 경기에서 단 한 개의 안타도 생산하지 못하고 부진했는데, 막상 미국 본토 개막전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3타수 2안타 1볼넷 1득점을 기록하는 등 나쁘지 않은 모습을 이어갔다. 가장 큰 문제는 올해 타석에만 전념할 오타니에게서 홈런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로 인해 미즈하라 스캔들이 오타니에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냐는 시선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은 이후 개막 이후 가장 오랜기간 홈런을 터뜨리지 못한 것은 37타석이었는데, 오타니는 전날(3일)도 아치를 그려내지 못하면서 '타이' 기록을 쓰게 됐다. 이날 첫 타석에서 홈런을 치지 못한다면, 새로운 기록이 만들어질 위기였다. 그리고 이는 현실이 됐다. 오타니는 이날 첫 번째 타석에서 샌프란시스코 선발 카일 해리슨에게 삼진을 당하면서, 개막 38타석 연속 무홈런을 기록하게 됐다.
하지만 오타니의 존재감은 두드러졌다. 오타니는 두 번째 타석에서 1루수 방면에 내야 안타를 뽑아낸 뒤 윌 스미스의 2루타성 타구에 빠른 발을 이용, 홈까지 파고들면서 어떻게든 팀에 기여하려는 의지를 뽐냈다. 그리고 세 번째 타석에서는 잘 맞은 타구가 중견수 정면으로 향하면서 추가 안타를 생산하지 못했는데, 네 번째 타석에서 마침내 고대하던 한 방이 터졌다.
오타니는 다저스가 4-3으로 근소하게 앞선 7회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샌프란시스코의 바뀐 투수 테일러 로저스와 맞붙었다. 그리고 오타니는 5구째 93.2마일(약 150km)의 싱커가 바깥쪽 스트라이크존 높은 코스로 형성되자 거침없이 방망이를 돌렸다. 이 타구는 방망이에 맞음과 동시에 담장 밖으로 향했음을 직감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맞았고, 무려 105.6마일(약 169.9km)의 속도로 430피트(약 131m)를 비행하며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첫 홈런으로 연결됐다.
개막 41타석 만이자, 지난해 8월 23일 신시내티 레즈와 맞대결 이후 224일 만에 터진 홈런. 그리고 이는 다저스 역사로 연결됐다. 다저스는 이날 경기 전까지 개막 8경기 연속 5득점 경기를 펼쳤는데, 이날 오타니의 홈런이 5점째로 연결이 되면서 1887년 브루클린 시절 이후 137년 만에 개막 9경기 연속 5득점 '타이' 기록을 작성하게 됐다. 첫 홈런이 구단 기록으로 연결된 것은 오타니의 '복'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대목.
좀처럼 홈런이 나오지 않으면서 오타니는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던 모양새였다. 그는 "좀처럼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서 초조한 마음이었다. 빨리 치고 싶다는 마음을 참으면서 내 스윙을 하려고 노력했다. 어떻게든 한 방이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홈런을 못 친 기간이 길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 기회로 앞으로도 좋은 타격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은 조금씩 잘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 오타니의 설명. 그는 "선구안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이게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것과는 다르지만, 굉장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배팅 케이지에서도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로버츠 감독을 비롯해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여러 도움을 받았는데 정말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의 부진은 혹시 미즈하라 스캔들의 여파 때문이었을까. 오타니는 이 질문도 피해가지 못했다. 그는 "멘탈을 핑계로 삼고 싶지 않다"며 "기술의 문제였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 때문에 그동안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그래도 첫 홈런의 기쁨은 숨기지 못했다. 오타니는 첫 홈런볼의 행방에 대해 "구단에서 팬분들과 이야기를 해주신다고 하더라. 내게는 굉장히 특별한 공이다.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라며 '무엇과 바꿨느냐'는 질문에 "야구공 2개와 방망이였다. 사인까지 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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