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잠실 박승환 기자] 롯데 자이언츠에게 지난 4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돈을 들여 유망주 육성에 투자했지만, 그 결과물을 찾아보기가 힘든 상황이다. 이제는 19년 만의 불명예 역사가 소환될 위기다.
롯데 자이언츠는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LG 트윈스와 팀 간 시즌 2차전 '엘롯라시코' 라이벌 맞대결에서 5-6으로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2022-2023년 스토브리그에서 무려 총액 170억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전력을 보강했던 롯데의 시작은 좋았다. 롯데는 4월을 단독 1위로 마친데 이어 5월에도 상승세를 유지하면서 상위권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부진하는 선수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6월부터 가파른 하락세를 그리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5강 경쟁력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시즌 초반부터 외국인 선수들이 기대에 못미쳤던 만큼 팬들의 입에서는 '교체'라는 단어가 끝없이 쏟아졌다. 그런 롯데가 칼을 빼든 것은 올스타 브레이크 시점. 하지만 원동력을 잃은 롯데에 '뉴 페이스'들은 큰 힘이 되지 못했고, 결국 시즌 중 래리 서튼 감독이 지휘봉을 내려놓는 최악의 사태를 겪었고, 7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결코 '돈'으로만 성적을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에 롯데는 이번 겨울 성민규 단장을 경질하고 박준혁 단장을 선임, 시즌 중 자진사퇴한 서튼 감독을 대신해 KBO리그 역대 최초 7년 연속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던 김태형 감독을 선임하며 대대적인 변화를 가져갔다. 하지만 이 이상의 변화를 줄 수는 없었다. 이미 2022-2023년 겨울 유강남-노진혁-한현희까지 170억 트리오를 영입하면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까닭에 샐러리캡이 찰랑찰랑거리기 시작했기 때문. 이로 인해 기존의 자원을 지켜내기는 커녕 오히려 전력이 약화됐다.
하지만 '윈 나우'라는 롯데의 목표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옛말처럼 현재의 전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겠다는 목표를 갖고 2024시즌을 준비했다. '대권'에 도전장을 내밀기에는 부족함이 있지만, 충분히 5강 경쟁은 펼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규시즌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각종 변수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올해 외야의 한자리를 맡아줄 예정이었던 김민석을 비롯해 군 입대를 앞두고 있지만, 강정호스쿨에 다녀온 뒤 눈에 띄게 좋아진 한동희가 내복사근 부상으로 이탈하게 된 것.
부상은 아니지만, 시즌 시작부터 부진의 늪에 빠진 선수들이 속출했다.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앞두고 있는 구승민이 6경기(2⅔이닝 9실점)에서 2패 평균자책점 30.38로 최악의 스타트를 끊었고, 성민규 단장 체제에서 영입했던 노진혁이 14경기에서 타율 0.176 OPS 0.488, 유강남이 17경기에서 타율 0.122 OPS 0.363, 한현희가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7.36으로 허덕였다. '상수'가 돼 줘야 할 선수들이 모두 '변수'가 된 것이었다. 이 밖에도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 고승민과 나승엽 등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 결과 롯데는 SSG 랜더스와 개막시리즈부터 4연패에 빠지더니, 지난주 삼성 라이온즈-키움 히어로즈와 6연전에서 모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16일 LG 트윈스와 맞대결에서도 투·타의 엇박자 속에 패하면서 7연패를 기록하게 됐다. 롯데가 7연패에 빠진 것은 233일 만이었다. 그리고 이는 김태형 감독 커리어 최다 연패 기록으로도 연결됐다. 롯데 지휘봉을 잡기 전 김태형 감독의 최다 연패는 6연패에 불과했다. 사령탑은 라인업에 과감한 변화를 주면서 어떻게든 연패 탈출을 노렸는데, 롯데가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일단 9회초 동점을 만드는 과정까지는 훌륭했다. 롯데는 박승욱의 선제 투런홈런으로 기선제압에 성공한 뒤 역전을 허용했지만, 전준우가 솔로홈런을 터뜨리면서 중반까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이후 선발 이인복이 문보경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하면서 승기가 기울어지는 듯했으나, 9회 대타 김민성과 이정훈의 연속 2루타로 추격의 고삐를 당겼다. 경기 막판 흐름을 탄 롯데는 빅터 레이예스와 전준우가 해결사 역할을 해주지 못했지만, 이어지는 2사 2루에서 LG '마무리' 유영찬이 흔들리는 틈을 잘 파고들었다.
그 결과 최항과 박승욱이 연속 볼넷을 얻어내 만루 찬스를 손에 쥐었고, 후속타자 손호영이 밀어내기 볼넷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문제는 이후였다. 상대 투수가 크게 흔들리고 있고, 팀 내 마무리 투수가 몸을 풀고 있기에 신중한 승부가 필요한 상황에서 정보근이 유영찬과 맞붙었다.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던 유영찬은 정보근을 상대로 초구에 147km 직구를 던졌다. 이 공 또한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난 코스였다. 그런데 여기서 정보근이 방망이를 내밀었다. 그 결과 허무한 우익수 뜬공으로 이어졌다.
아쉬운 장면은 계속됐다. 연장 승부를 뇌고 김원중도 제구에 난조를 겪으며 무사 만루 위기를 자초한 것. 큰 위기였지만 김원중은 안익훈을 상대로 좌익수 방면에 얕은 뜬공을 유도했는데, 이때 중견수 김민석이 공을 잡아내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3루 주자 박해민이 태그업을 시도한 것. 김민석이 재빨리 홈을 향해 공을 뿌렸는데, 송구의 방향은 올바르지 않았고, 이에 박승욱이 공을 커트했다. 이후 재빨리 홈으로 공을 뿌렸으나, 이미 3루 주자의 박해민이 홈에 도달한 뒤였다. 지난해 롯데의 선택을 받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야수였던 김민석의 경험 부족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경기가 종료된 후 박해민은 김원중의 잦았던 견제에 "뛸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내게 견제를 하면서 투수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견제에 죽지 말자는 생각 뿐이었다"며 마지막 홈 대쉬에 대해서는 "짧은 거리긴 했는데, (김민석이) 뛰어나오는 자세가 불안정해서 충분히 홈에서 승부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처음에는 안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뛰어 들어오는 자세가 불안정했다. 나도 외야를 하는 입장에서 다시 정자세를 잡기 쉽지 않아서 승부를 걸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롯데는 2019년 9월 28일 KIA 타이거즈~10월 1일 키움 히어로즈전 이후 무려 1660일 만에 8연패의 늪에 빠지게 됐고, 2003년(2승 16패 2무) 이후 개막 20경기에서 무려 21년 만에 16패를 기록, 이는 KBO리그 역대 개막 20경기 최저 승률 공동 6위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야말로 굴욕이 아닐 수 없었다.
투·타에 이어 수비까지 그 어느 곳 하나 믿을 수 없는 롯데의 현 상황은 참혹하다. 도저히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을 가질만한 요소도 많지 않다. 그야말로 갑작스럽게 마운드가 안정되고, 타자들의 감이 살아나는 기적을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성적보다 뎁스를 강화하고 유망주들 육성하는데 기울인 노력의 결과물을 찾아볼 수가 없다. 유망주 중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없는 까닭이다.
지금의 흐름이라면 롯데는 9연패에 빠질 위기다. 18일 LG와 주중 3연전의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지 못한다면, 롯데는 지난 2005년 6월 14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1-2로 지면서 9연패를 당한 이후 무려 6883일 만에 악몽을 되풀이할 수도 있게 됐다.
잠실 = 박승환 기자 absolute@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