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미운 세 살’이라더니, 28개월을 앞둔 아이가 요즘 가장 잘하는 말은 ‘아니야’다. 시도 때도 없이 생떼를 부리며 “아니야!”라고 외친다.
발달이 느린 아이는 표현언어 발달도 꽤 느려서 24개월에서야 ‘엄마’를, 이어 26개월에 ‘아빠’를 잘 말하게 되었다. 그런데 불과 2개월 만에 이제 세 살이 됐다고 너무나 정확하게 세 음절로 ‘아니야’를 말하고 있다.
나는 다른 아기가 단어 첫음절만 따라 하는 방식으로 말을 배우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예를 들어 ‘코끼리’의 ‘코’만 말하는 식이다. 그런데 아이는 첫음절을 따라서 말하지도 않고 할 줄 아는 단어도 거의 없으면서 갑자기 두 음절인 ‘아니’도 아니고, 세 음절인 ‘아니야’를 터득했다.
놀라움은 잠시뿐, 온종일 “아니야” 소리를 듣고 있자니, 발달이 느린 아이가 어째서 부정 표현이 많아지는 ‘미운 세 살’은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지 기가 막혔다.
누군가 ‘미운 세 살’을 이야기하며 아이가 모든 말을 일단 ‘아니’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또한 요구사항도 많아지고 뭐든지 자기가 혼자 해보려고 하는데, 제 뜻대로 되지 않으면 시도 때도 없이 생떼를 부린다고 했다.
지금 내 아이가 딱 그렇다. 밥을 먹을 때 자기가 원하는 게 따로 있는 듯이 자꾸만 냉장고를 열려고 하거나 간식을 보관하는 찬장을 가리킨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안아서 원하는 걸 직접 가리키게 해도 이것저것 정신없이 가리키면서 꺼내주는 것마다 전부 “아니야”라고 한다. 아직도 숟가락질이나 옷 입기 등은 혼자서 할 생각이 없으면서, 뚜껑 열기나 장난감 조작을 도와주려고 하면 화를 낸다. 딱히 목적지도 없는 것 같은데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 엄마, 아빠를 이끌며 다닌다.
낮잠을 덜 자고 피곤한 오후를 보낸 저녁에 아이는 계속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면서도 자자는 말을 못 들은 체하며 침실로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겨우겨우 침실에 들어가서도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이불 위에서 울며 연신 “아니야”를 외친다. 혹자는 이 시기에 아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떼를 쓴다고 하던데, 내 아이는 오로지 “아니야!”만 외치니 무엇을 원하는지 더 알 길이 없다.
아이가 잠든 후에도 “아니야” 소리가 환청처럼 귀에 맴돌았다. 그때 남편이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얘기를 했다. 유인원 지도자 ‘시저’가 인간을 향해 가장 처음으로 한 말이 바로 “No.”였다고. 생각해보면 “아니오”만큼 자신 의사를 분명히 드러내는 말도 없겠다.
‘미운 세 살’ 떼쓰기는 일종의 자기주장으로서 아이가 이 시기에 꼭 거쳐야 할 발달과업이라고 한다. 흔히 걸음마기라고 불리는 이 시기 아이는 엄마와 분리된 존재로서 자신의 개별성과 자율성을 획득하고 자기주장이 강해진다. 인지가 발달하며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아직은 능력이 부족하기에 거기에서 오는 필연적인 실패로 좌절감을 맛보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가 실패와 좌절감을 견디며 성취와 자기통제력을 획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아이가 연신 “아니야”를 외치며 울더라도 그럴 때임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밖에. 아이가 조만간 “네” 혹은 “응”도 터득하기를 희망하며 이 시기를 또 버틴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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