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도도서가 = 북에디터 정선영] 요즘 나는 내 열 손가락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가 많다. 대체 왜 열 손가락 중 네 손가락도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못하는 걸까. 기타를 배우면서 나는 내 손가락이 답답할 때가 많다. 특히나 왼손가락이 빠르고 정확하게 코드를 짚지 못해 박자를 놓치는 일이 다반사다.
오른손잡이치고 왼손을 많이 쓰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20대 초반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른손이 마비된 적이 있었는데, 그 후 의식적으로 왼손을 많이 사용하려 한다. 마우스도 왼손으로 쓰고 스마트폰이나 텀블러 같은 생활 속 물건을 사용할 때도 주로 왼손을 쓴다. 그런데 기타 코드 운지는 다른 문제인가 보다.
기타 선생님은 1년 반이 넘도록 왼손가락이 자유롭지 못한 내게 새 연습법을 일러주셨다. 풀코드, 즉 F코드 형식의 손 모양으로 기타줄을 한 번에 하나씩 짚고 소리를 내는 연습을 하게 했다. 왼손 검지는 맨 위 6번 줄, 약지는 5번 줄, 소지는 4번 줄, 중지는 3번 줄을 차례로 하나씩 짚어 내려오는 식이다.
시범을 보이는 선생님 손가락은 자유자재로 부드럽게 움직이며 음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하지만 나는 손가락 하나를 떼고 다음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도 버거웠다. 손가락이 갈 곳을 잃고 허둥지둥하더니 애초의 운지법도 까마득해졌다.
아니 컴퓨터 키보드는 열 손가락 다 쓰면서도 잘만 치는데 대체 내 손가락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처음 컴퓨터 키보드를 쳤던 때를 떠올려봤다. 초등학교 때 컴퓨터를 처음 만졌다. 그때는 학교 수업에 컴퓨터 시간이 따로 있었다. 뚱뚱한 모니터 앞에 키보드를 놓고 타자 연습부터 했다. 키보드로 한글 자음과 모음을 누르는 간단한 퀴즈 같은 걸 풀면서 자판 위치를 익히기도 했다. 한참이 지난 대학 신입생 때만 해도 일 분에 몇 타 치냐는 얘기를 하곤 했다.
돌이켜보니 그때도 나는 타자가 빠르고 정확한 편이 아니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는데 북에디터라는 일의 특성상, 텍스트를 많이 다루다 보니 어느새 타자 속도도 빨라지고 오타도 줄었다. 당연히 이제는 한글 자모 위치를 머릿속으로 더듬어가며 키보드를 치는 일도 없다. 손가락 움직임을 신경 쓰지도 않는다.
어쩌면 지금 기타를 칠 때 나는 틀리지 않으려고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더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컴퓨터를 처음 배울 때처럼 타자 속도가 좀 느려도 오타를 좀 내도 괜찮겠다. 북에디터 일을 하면서 키보드에 익숙해졌듯이 기타 운지도 그러기를 바랄 수밖에.
정선영 북에디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취미로 기타를 시작했다. 환갑에 버스킹을 하는 게 목표다.
이지혜 기자 imari@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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