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반항과 창조의 브로맨스 에밀 졸라와 폴 세잔│저자: 박홍규│틈새의 시간
책 만드는 사람들은 출판업계를 ‘홍대 바닥’이라고도 말합니다. 이곳에 많은 출판사가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문화 예술의 거리로 불리우던 홍대의 옛 정취도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의미 있는 책의 가치를 전하고 싶습니다. 홍대 바닥에서 활동 중인 다섯 명의 출판인이 돌아가며 매주 한 권씩 책을 소개합니다.
[번역가 조민영] ‘졸라와 세잔의 결별은 드레퓌스 사건 때문’
번역 중인 책과 관련해서 ‘반유대주의’와 ‘드레퓌스 사건’을 검색하다 신문에 실린 이런 서평 제목을 보았다.
졸라와 세잔이 친구인 줄도 몰랐는데 결별이라니. 괜스레 허탈하면서도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책 제목은 〈반항과 창조의 브로맨스 에밀 졸라와 폴 세잔〉이다.
‘브로맨스’라는 수식어를 붙였다면 보통 사이가 아니었을 텐데. 이들이 드레퓌스 사건 때문에 어떻게 어긋난 걸까.
알고 보니 졸라와 세잔의 브로맨스는 나만 몰랐던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다. 두 사람은 10대 초반 세잔이 태어난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처음 만난다. 그 뒤 남프랑스의 온화한 자연 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함께 성장한다.
그들은 생김새도 출신 배경도 성정도 달랐다. 하지만 반항 정신과 개성을 추구하는 창조 정신에서만큼은 잘 통했다. 이렇게 졸라와 세잔은 서로를 보완하고 강화하며, 파리라는 무대로 나아가 각자 문학과 미술 분야에서 꿈을 펼친다.
그러나 졸라가 46세, 세잔이 47세이던 1886년을 끝으로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서로 만나지 않았다. 졸라는 이 해 화가 세잔을 모델로 소설 〈작품〉을 발표했다. 세잔은 졸라가 이 소설에서 자신을 모독했다고 생각하여 그와 다투었고 그 뒤로 연락을 끊었다.
이것이 세잔 전기를 통해 현재 정설로 알려진 두 사람의 결별 스토리다. 그러나 저자 박홍규는 〈반항과 창조의 브로맨스 에밀 졸라와 폴 세잔〉에서 이 정설에 반기를 든다. 관련 사실을 기술한 세잔 전기에 오류와 왜곡이 있다는 것.
먼저 두 거장의 삶과 작품세계를 깊고 넓게 살펴보고 이들이 갈라선 진짜 원인이 드레퓌스 사건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1894년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육군 대위이며 유대인인 알프레드 드레퓌스에게 반역 혐의를 씌워, 아무 증거도 없이 종신형을 선고하고 진실을 은폐한 사건이다.
이 사건 이전부터도 프랑스에는 반유대주의 정서가 팽배했다. 군부와 가톨릭 세력은 애국과 민족주의를 부르짖으며, 드레퓌스를 죽여 마땅한 유대인 스파이로 몰아간다. 급기야 대혁명의 나라 프랑스는 드레퓌스파와 반드레퓌스파로 두 쪽이 난다.
잘 알려진 대로, 이 과정에서 에밀 졸라는 1898년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며 드레퓌스가 무죄임을 주장한다. 반면에 폴 세잔은 이 시기를 전후로 반유대주의와 드레퓌스 유죄를 선동한 가톨릭에 귀의한다.
세잔은 졸라와 함께 기존 제도와 전통을 거부하며 개성과 새로움을 추구한 예술가였다. 또한 마네, 드가, 르누아르 등이 살롱전에 입선했을 때도 그는 수차례 낙선 끝에 뒤늦게 성공한 비주류에 속했다.
이런 면에서 세잔의 전향이 급작스럽긴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과 비교해보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젊은 시절 진보를 부르짖던 사람도 나이가 들면서 보수 성향으로 바뀌는 일을 심심치 않게 마주하니 말이다.
또한 그때나 지금이나 진보와 보수, 좌와 우는 극단을 달린다. 정치 성향이 달라 가족끼리도 연을 끊는 마당에, 친구에게 등 돌리는 일이야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졸라와 세잔의 결별은 〈작품〉에 얽힌 지엽적 이유보다, 시대적 혹은 역사적인 더 큰 맥락에서 살펴야 한다. 이 책이 결별 이유를 재검토하는 데서 시작하여, 졸라와 세잔이라는 프리즘을 따로 또 같이 섞어가며 19세기 프랑스 사회를 폭넓게 분석하는 이유다.
이 시기 발생한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사회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반면 졸라와 클레망소 등 참여하는 지성이 불의에 눈감지 않고 정의를 되찾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폭발한 반유대주의 광기는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또 다른 인종차별주의에 기름을 붓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울까. 저자는 20세기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을 거론하며 우리 사회에 에밀 졸라 같은 지식인이 부재함을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졸라와 세잔처럼 반항하고 창조하며 뜨겁게 살아가라고 당부한다.
|번역가 조민영. 세 아이가 잠든 밤 홀로 고요히 일하는 시간을 즐긴다.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번역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번역가 조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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