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저
[시조시인·여행작가 신양란] 한 지인이 물었다. “남편과 함께 여행 다니다 보면 싸움 안 해요? 난 와이프랑 여행 갔다 이혼할 뻔했는데….”
이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공감이 됐다. 우리 부부가 천상에서 내려온 선남선녀도 아닌데, 어찌 싸우지 않고 여행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여행하면서 여러 차례 티격태격했고, 그로 인한 씁쓸한 기억이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다.
그 가운데 베트남 하롱베이에서 갑오징어 때문에 감정이 상했던 건 내 잘못이 크다. 굳이 그런 일로 남편에게 짜증 낼 건 없었는데, 그땐 왜 그리 화가 났던 걸까. 그렇게 보면 아직 이혼을 안 했다는 게 그나마 자랑이라고 할까.
20년 전 하노이를 방문했을 때 하롱베이에 다녀온 것은 하노이 택시 탓이 컸다. 택시가 아니면 돌아다니기 어려운데, 별별 다양한 방법으로 바가지를 씌우니 불쾌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현지 여행사의 하롱베이 1박 2일 투어에 참가해 피난을 떠났다.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당시 하롱베이가 마침 영화와 광고로 소개됐는데, 특히 광고 속 몽환적인 풍광은 현실 세계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살아 생전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하롱베이는 TV 여행 프로그램에서도 단골 소재였다.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곳이 바로 해산물 요리를 푸짐하게 내놓는 선상 식당이었다. TV 속에서 리포터가 맛있게 먹으면서 온갖 감탄사를 늘어놓는 걸 보면 저절로 구미가 당겼다.
그래서 남편에게 “우리도 나중에 하롱베이에 가게 되면 저 식당에 가서 회나 실컷 먹자”고 얘길 하곤 했다. 회를 좋아하는 남편도 좋은 생각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내가 ‘회나 실컷 먹자’고 말한 까닭은, 베트남이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싸니 실컷 먹어봤자 몇 푼이나 되겠느냐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결코 값이 싸지 않았다. 이미 관광객을 벗겨 먹는 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먹는 거나 가격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굳이 점수를 주자면, 하롱베이 절경을 보면서 먹는 낭만 정도랄까.
그래서 나는 눈물을 머금고 그 낭만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런데 딸아이가 수조 속을 헤엄치는 거대한 갑오징어를 보더니, 그게 먹고 싶다는 거다. 자식들에게 한없이 말랑한 남편은 내가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기어이 그 오징어 값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장사꾼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사지 않고는 못 배기게 졸라대는데, 그놈의 몸값이 물경 백만 동이라는 게 아닌가.
나는 기겁했다. 백만 동이면 그때 환율로 우리 돈 7만원이었다. 아무리 덩치가 크다고 해도 기껏 오징어가 아닌가. 오징어 한 마리에 7만원이라니. 게다가 베트남에서는 근로자 한 달 임금이 백만 동이 안 된다는데, 한 가족 한 달 생활비만큼 비싼 오징어를 먹을 수는 없다는 게 나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남편은 “다섯 식구가 먹을 수 있을 만큼 큰(정말로 그렇게 크기는 컸다) 오징어라면 7만원이 그리 비싼 것은 아니고, 남의 나라에 와서 이런 오징어를 먹어보는 것은 값을 따질 수 없는 특별한 추억이 되니 너무 돈 생각만 하지 말라”며 기어이 주문했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며 주문한 오징어를 맛있게나 먹었으면 분통이 덜 터졌으련만, 어설픈 주방장은 끓는 물에 데치거나 가스 불에 대충 그을린 다음 숭덩숭덩 썰어내는 방법밖에 모르는 모양이었다.
낭만은 고사하고, 설익은 오징어회를 씹으며 분노를 삭히다 보니 하롱베이의 절경 또한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애꿎은 남편에게 짜증이 솟구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옆에서 계속 투덜대는 나 때문에 남편 또한 기분 좋을 리 없건만 자식들 앞이라 꾹꾹 참는 게 분명했다.
그런 씁쓸한 추억이 있는 하롱베이에 다시 갔는데, 의외로 남편은 애들에게 거대한 갑오징어 요리를 먹인 것만 뿌듯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가 아직까지 이혼하지 않은 건 남편 덕인지도 모르겠다.
|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여행자의 성당 공부><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신양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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