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교사 김혜인] 카카오톡을 무심코 보다가 한 프로필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빨리 크지 마.' 사진 속 아이는 예쁘게 웃고 있었다. 아이가 성격이 순하고 발달이 빠르면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 아이도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나는 아이가 빨리 컸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문득 상견례 때 일이 떠올랐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예비 시어머니였던 어머님은 “저는 아들이 세 살 때까지 제게 할 효도는 이미 다 했다고 생각해요”라고 하셨다.
‘아이 때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은 전에도 들어봤다. 하지만 내 남편이 될 사람 어머니 입에서, 그것도 상견례 자리에서 들은 그 말에서 나는 묵직한 진심을 느꼈다. 삶의 어떤 시간과 무게를 지난 끝에 응축되어 나오는 고백일까.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상견례 자리에서 오간 말 중 오직 그것만 기억에 남을 정도로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후로 잊고 있던 그 말이 올해 유독 자주 떠올랐다. 아이가 내년이면 만 3세가 되기 때문이다. 아이는 앙증맞은 모습 그 자체로 내게 행복을 주었지만, 숱한 울음과 떼와 분노발작으로 힘든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 “아이는 주로 힘들다가 반짝 예쁘다”는 말이 마음에 훨씬 와닿았다.
나는 아이에게 종종 “네 효도가 정말 이 정도뿐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농담조였으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도 아들 키우느라 고생하셨는데, 어떻게 그런 고백이 나오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다. 전쟁 같이 치열했던 한 해를 보내며 이제야 어렴풋이 알 듯 했다.
아이가 마냥 ‘예쁜 짓’을 할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어느 날 아침 아이가 바닥을 뒹굴며 자지러지게 우는 때였다. 내가 이성을 잃고 급기야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을 때, 아이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필사적으로 나를 붙잡을 때였다. 화가 난 내가 아이 팔을 뿌리치자 아이가 더 절실하게 나를 붙잡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이 아이의 전부구나.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데도, 자기 살갗을 내게 붙이려고 안간힘을 쓰며 매달리는구나. 엄마를 향한 이 맹목적인 사랑을 어쩌면 좋을까.
아이에겐 엄마가 우주라고 한다. 그러나 엄마가 세상 전부인 양 이렇게 사랑을 주었다가, 나중에 엄마는 뒷전에 두고 더 큰 세상을 탐색하려고 나가겠지. 엄마를 향한 이 절대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의 끝은 자명하다.
화를 그치고 아이를 안아주려 하자 아이가 먼저 두 팔로 내 목을 아주 꽉 끌어안았다. 아기 코알라가 엄마에게 매달리듯, 두 다리로는 내 허리를 단단히 둘렀다. 내 목에 아이의 말랑한 볼살이 닿았다.
내가 “이 코알라야”라고 하자마자 아이가 어설픈 발음으로 “엄마 껌, 악, 지”라고 말했다. 내가 평소 자주 “이 코알라야, 엄마 껌딱지야”라고 말해서인가, 실로 한참을 웃었다.
언니네 집에 간 날이었다. 아이가 온종일 내 다리 사이에서 강아치처럼 뒹굴거리기만 했다. 곧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조카가 “정말 엄마 껌딱지네”라고 말했다.
조카는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개구쟁이 어린이였는데 몇 달 사이에 키가 꽤 크고 표정이 다소 무뚝뚝해졌다. 말수가 부쩍 줄고 방 안에 처박혀 있는 꼴이 영락없는 청소년기였다. 잘 자라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조금은 서운하다.
나는 “아이고 이 녀석아, 이제 좀 떨어져라”고 말했지만 그 말과 다르게 아이를 품에 안고 얼굴에 마구 뽀뽀를 해대었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교사 김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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