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야구
“세계의 오타니.”
일본인들은 LA 다저스의 오타니 쇼헤이 선수를 그렇게 부른다. 특이한 수식어를 붙여 과장하기 좋아하는 일본인이지만 그보다 더 큰 별명을 붙이기도 쉽지 않을 터. 날마다 미국 프로야구의 신기록을 쌓아가는 오타니를 보면 일본인들로서는 더없이 자랑스러울 것이다. 그런 만큼 오타니는 물론 가족들의 크고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일본의 각종 매체는 기사를 쏟아낸다.
오타니 부인이 최근 딸은 낳은 뒤에는 한층 더 심해졌다: “‘오타니 베이비’ 탄생은 경제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목을 받는 것은 유아용품 관련 주식. 종이 기저귀, 분유·이유식, 사진 스튜디오 등 아기 관련 종목은 다양하다. 오타니가 앞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딸의 성장 과정을 공개하면서 ‘오타니 아빠 애용품’으로 제품이 알려지게 되면 주가 상승도 기대된다.”
이 정도는 그래도 무난한 편. 딸의 발가락 길이까지 화제에 올렸다. “엄청나게 키가 큰 모델 같은 체형으로 자랄 것 같다.” “유전 알고리즘의 기적. 이 딸이 훗날 올림픽 금메달이든 노벨상 수상이든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런 터무니없는 내용도 기사에 담겼다. 도가 지나치다. 시시콜콜하다거나 호들갑스럽다 할 정도다.
■오타니 ‘인생 설계 노트’ 무리한 보도에…일본인들 “야구 선수로만 다뤄 달라”
이런 기사들이 이어지자 일본인들이 냉정함을 호소하고 나섰다. 지나치게 흥분한, 얄팍한 감정·감성만 자극하는 기사들은 인제 그만 쓰라는 것. 오타니에 대한 거부감마저 생길 정도라고 했다. 야구 선수는 야구 선수로만 다뤄 달라는 요구. 이들의 반응은 뜨거운 공감을 얻고 있다. 매체들 과열 보도가 만든 ‘오타니 증후군’의 피로감이 확산한 탓으로 보인다.
그 결정의 계기는 ‘오타니 인생 설계 노트.’ 이미 오타니의 뛰어난 능력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것. 그가 고교 시절 18세 이후의 목표를 기록한 이 노트에는 “20세 메이저리그 승격. 22세 사이영상 수상. 26세 월드시리즈 우승과 결혼. 28세 아들 출산. 31세 딸 출산. 32세에 두 번째 월드시리즈 우승. 33세에 둘째 아들 출산”이라 적혀 있다고 한다.
마침 7월에 31세가 되는 오타니에게 딸이 태어나자 “자신의 목표를 이뤘다”는 보도가 나왔다. ‘인생 설계 노트’를 새삼 들먹이며 “말한 대로 실행했다”고 놀라워했다.
그러자 자극·선정 보도라 꾸짖으며 정상을 찾으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이런 반응마다 수천 명, 수백 명이 공감했다.
물론 고교생 때 이미 그 목표를 설정하고 정확하게 달성한 예지력·실천력을 높이 산 숫자도 상당히 많았다. 그렇지만 오타니를 향한 일본인들의 맹목 사랑을 감안하면 반감의 강도는 이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로지 축하만 한 반응도 많았다: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은 단순히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명확한 목표와 치밀한 계획에 따른 전략적 행동이 착실히 결과를 만들어낸다. 오타니 노트는 그야말로 그런 사례. 야구뿐 아니라 인생 설계까지 실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하다. 재능도 중요하지만 이런 계획성·실행력이 있었기에 세계 최고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본받고 싶다.”
■ 한국 매체들의 특정 선수에 대한 지나친 집착‧편애도 ‘이제 그만’
하지만 매체를 비판하는 반응이 전체의 절반 가량. 아주 매서운 지적, 진지한 충고들이었다. 그러나 떼로 몰려가 “감히 우리 오타니를 건드려”라고 항의하는 과잉 충성 팬들은 없었다.
“순수하게 스포츠 선수로서 응원하고 싶다. 하지만 요즘은 뭐든지 다 마치 신처럼 다뤄져서 거슬린다고 해야 할까? 싫어하는 스포츠 선수 중 한 명이 되어가고 있다.”
“오타니는 과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은 별로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 이루어지지 않게 될 것 같기 때문’이라 말했다. 이 노트도 마음속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이다. 굳이 주변에 ‘유언(有言)’한 것은 아니다. ‘유언실행’이라는 것은 주변에 ‘나는 반드시 ~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타니는 애초에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이건 질 낮은 기사다. 그를 이용한 장사일 뿐이다.”
“오타니 선수, 출산 축하합니다. 그러나 매일 뉴스에 오타니 이야기만 나온다. 솔직히 지겹다. 보통 사람들은 물가 상승, 임금 정체 등으로 지쳐 있는 경우가 많다. 나도 하루하루 겨우 살아간다. 오타니의 야구 활약 외에는 보도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시기나 질투일지 모르나 더 보도해야 할 것이 있지 않나?”
“첫 아이가 태어난 축하할 날에 고교 시절 인생 설계 노트랑 대조할 필요가 있을까? 억지로 끼워 맞추면 오히려 차이가 더 도드라지고 트집 잡히기도 한다. 애초에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스포츠 선수의 가족 일인 만큼 조용히 해주었으면 한다.”
“야구에 대해서는 인생 노트대로 되든 안 되든 이해한다. 하지만 결혼이나 출산은 인연이고 하늘의 선물이다. 그대로 됐든 안 됐든 떠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기사, 좀 무리 있는 듯하다.”
“월드시리즈 우승도 하긴 했으나 나이는 다르다. 결혼 시기도 맞지 않다. 장남도 안 태어났다, 핵심어 몇 개 뽑아서 ‘말한 대로 이뤄졌다’고 하는 건 좀 무리다.”
“그냥 오타니 기사를 쓰고 싶어 억지로 내용을 짜낸 것 같은 느낌. 단순히 ‘딸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오타니 보도가 지나치다. 다른 보도도 필요하다.”
“결혼, 출산, 더군다나 성별까지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다. 그냥 바람과 우연이다. 그런 부분까지 계획이었다고 한다면 아내와 아이에게 실례다. 이 부부가 나쁜 건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뉴스에 나오고 광고에만 나오는 걸 보면 지겹다. 오타니의 야구 외의 일은 보도하지 않았으면 한다.”
분별없는 매체들이 오타니에 대한 반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무리 “세계의 오타니”라 자랑스러워해도 지나치면 질리게 되는 법. 한국 매체들도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여러 문제를 다 덮어둔 채 과대 포장하고 무조건 옹호하는 선수들이 있지 않은가?
손태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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