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손여은의 악녀를 사랑하는가 [MD칼럼]

[이승록의 나침반]

손여은의 연주는 여운이 길다.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 한채린, '언니는 살아있다!' 구세경, 최신작 MBC '금수저'의 서영신까지, 손여은이 연기한 악녀들은 어쩐지 짠하다. 그녀들의 악랄한 행동을 보고 있으면 분통이 터지는데, 이 여자들의 사연을 알고 난 뒤에는 왜 그런지 안타깝다. 처량한 마음도 든다.

손여은이라서 그렇다.

15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만난 손여은은 악녀 연기에 대해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원래 저는 화를 잘 못 내요. 화내는 연기를 하고 나면 스트레스 풀린다는 분들도 계시는데, 전 안 그렇더라고요."

손여은은 스스로 여러 번 강조한 것처럼 "낯을 가리는 편"이었다. 구세경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목소리는 나지막하고, 한채린도 그랬나 싶을 만큼 "예전에는 인터뷰할 때 기자 분 눈도 제대로 못 쳐다봤다"고 한다. 이런 성격으로 어떻게 그런 악녀를 연기했을까. 새삼스러워질 때, 손여은은 서영신처럼 나긋한 목소리로 또렷이 말했다.

"카메라 앞에선 안 그래요. 사진 찍는 걸 좋아했거든요. 데뷔 전에는 제가 스튜디오 가서 찍은 사진 갖고 여기저기 에이전시에 돌리기도 했어요. 재밌더라고요. 카메라 앞에서 일할 때는 안 떨려요."

내성적인 성격으로, 불같은 악녀를 연기한다.

일곱 살부터 배운 피아노로 부산예술고등학교, 동아대학교까지 진학해 드라마에선 직접 우아한 피아노 연주 실력을 뽐냈다. 그래놓고선 예능에 나와 '폭탄주'를 능숙하게 제조해 MC들을 놀라게 했고, 아이돌 노래를 부르며 능청스럽게 춤추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손여은이다.

취미는 "산책"이라고 한다. 즐겨 듣는 음악으로는 "클래식"이라고 했다. 그러다 손여은은 "요즘 '금수저' OST 중 푹 빠진 게 있다"며 들뜬 목소리로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음악 어플을 재생했다. 희대의 악녀들을 연기해낸 그 사람이 맞나 싶다. 카메라 밖에선 전혀 다른 얼굴이다.

"'언니는 살아있다!'는 악역이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사랑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요. 응원해주신 거에 감사했던 기억 밖에 없어요. 사람 내면엔 선한 것도 있고 악한 것도 있잖아요. 악한 행동을 할 때에도 이 사람이 악행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을 텐데, 저도 (구)세경이한테 마음이 많이 짠했거든요. 그런 모습들을 시청자 분들이 아시면 어떨까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그걸 잘 이해해주신 것 같아요. 세경이를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들을 가지셨나 봐요."

손여은과의 인터뷰는 전제부터 잘못돼 있었다.

우리가 쉽게 '악녀'라고 불렀던 캐릭터들을 정작 손여은은 '악녀'가 아닌 '여자'로 이해하고 있었다. "피아노는 같은 클래식이더라도 어떤 연주자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던 손여은이다. 같은 악녀도 손여은이 연기하니 전혀 다른 여자가 되었다.

배우로 데뷔해 언제가 가장 행복했느냐는 질문에 손여은은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악녀를 연주하는 배우, 손여은이다. 그 대답의 여운이 내내 남는다.

"제가 어떤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됐을 때 제일 행복했어요. '언니는 살아있다!'를 찍었을 때인데, 한 시청자 분이 자신도 맏딸이라면서 제가 맡은 캐릭터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드라마를 보고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것 같던 아빠를 이해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또 다른 분 중에는 한 번도 크게 울어본 적 없으셨는데, 제 연기를 보고 소리 내서 울게 됐다는 분도 계셨어요. 그런 말 들을 때마다 행복했어요. 그리고 생각했어요. 책임감 있게 연기해야겠다고요."

[사진 = 이끌엔터테인먼트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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