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민, 튄다 [MD칼럼]

[이승록의 나침반]

좀 튄다.

일단, 화법이 튄다. 말이 무척 느리다. 정확하게는 답을 하는 속도가. 처음에는 "네" 하고 별말 없길래 '질문이 어렵나?' 싶어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고 인터뷰지를 훑었는데, 그제야 답이 나온다.

"네. 연기를 하는 순간에 느껴져요. 제가 완벽하게 준비 못하고 찍었을 때에는 스스로를 되게 많이 혼냈던 것 같아요. 그럴 때 멘탈이 많이 나가요. 완벽주의 같은 성격이라 잘 못 견디나 봐요."

대답도 튄다. "비 오는 날을 안 좋아한다"길래 그 이유를 물었더니, 역시나 이번에도 '하나, 둘, 셋'까지 기다린 다음에야 답이 나온다. "비가 오면 마음이 가라앉으니까요"라거나 "따사로운 햇살이 좋아요" 같은 대답을 예상했으나, 글쎄 "제가 집착하는 무언가가 있어요"란다. 대체 뭘까, 그 집착은. 물론 답은 한번에 들려주지 않는다. 호기심이 최고조에 달한 순간, 배우 정보민이 입을 뗀다.

"제가 앞머리 처지는 걸 진짜 안 좋아하거든요. 속눈썹 내려가는 것도 진짜 싫어해요. 그게 처지면 기분도 안 좋아지거든요. 꿉꿉해지는 것도, 신발 젖는 것도요. 비 오는 날에는 전에다가 막걸리 먹어야죠!"

근데 연기가 튄다.

처음 TV 속 정보민의 존재가 눈에 들어온 건 KBS 1TV 드라마 '국가대표 와이프' 한슬아 때였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본 장면이다. 웬 앳된 얼굴의 여학생이 처량한 가족의 신세를 자못 어른스럽게 늘어놓고 있는데, 발성과 발음이 워낙 또렷하게 들려서 한참을 지켜봤다. 그때는 그게 이 말 느린 배우 정보민인 줄은 알지 못했다. 단지 그 목소리와 연기가 유난히 눈에 띄었을 뿐이다.

"발음 연습을 할 때에는 젓가락을 입에 물고 내용이 다 이해 갈 때까지 읽어요. 그럼 입이 풀려서 대사를 받아들이기 쉬어지거든요. '국가대표 와이프'는 저에겐 첫 지상파 작품이라 더 노력했던 것 같아요. 영혼을 갈아넣었죠, 헤헤."

정보민을 다시 발견한 건 MBC '금혼령, 조선 혼인 금지령'에서였다.

아무리 퓨전 사극이라지만 앞머리 내린 차림에 말투도 현대의 것을 쓰는 해영이란 인물이 워낙 튀었는데, 이상하게 해영이 카메라에 잡힌 순간, 그 예외적인 설정도 마치 해영만의 다른 시대와 공간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해영에게만 허용된 일종의 맑은 세계였다. 그때서야 찾아본 그 배우의 이름이 바로 '정보민'이었다.

"연기가 재미있는 건, 제가 가장 재미있어 할 캐릭터를 찾았을 때 같아요. '이렇게 하면 재미있겠지?' 생각하고 난 다음에 촬영에서도 너무 마음에 들면 만족감이 '확!' 하고 올라가거든요. '그래, 연기하길 잘했다!' 싶더라고요."

정보민이란 새싹이 잎을 틔운다.

그래서 기다린다. 정보민이 입을 굳게 다문 순간은 잎을 고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진득이 기다리고 나면 정보민이 입을 열고, 맑은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봄을 기다리면 피어날 보석 같은 푸른 잎의 이야기.

"인생 드라마는 '나의 아저씨'요. 푹 빠져서 봤어요. 저도 거기서 하나의 캐릭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요. 제 성격이요? 순하게 생각들 하시지만, 실제로는 막 밝지만은 않아요. 제 이름은요, 넓을 보, 옥돌 민이란 뜻이에요. 큰 보석이요."

[사진 = 아우터코리아, 스튜디오 선화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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