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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하진 기자]
본명이 고은태인 고은은 1933년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나 미룡국민학교를 걸쳐 1943년 군산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했지만 4학년 때 중퇴했다.
6·25 전쟁을 겪은 후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한 고은은 일초란 법명으로 효봉선사의 상좌가 된 이래 12년간 승려 생활을 했다. 이후 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조지훈의 천거로 1958년 한국시인협회 '현대시'에 '폐결핵'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게 됐다. 이후 '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등이 서정주의 추천으로 발표됐다.
1960년 첫 시집인 '피안감성'을 내면서 어두운 독재시대에 맞서는 재야운동가로서의 험준한 길을 걷고 19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를 출판하며 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고은은 1970년대에는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매진해왔다. 1973년 박정희 정권 3선 개헌반대 운동의 첫 단계인 개헌청원운동에 문인 대표를 참가했다. 또한 전태일 열사의 죽음에 시인으로서의 사회적인 역할에 앞장서다 감옥에 네 차례 수감되기도 했다.
1978년 제 1회 한국문학상 수상을 시작으로 오해 제 5회 영랑시문학상까지 무수한 상을 받았으며 그에 걸맞게 '만인보' '백두산','남과 북' 등의 작품을 펴냈다.
1980년 5·18 직후 김대중 내란 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 군법회의에서 20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또한 전두환 정권의 집권 연장 기도에 맞선 1987년 민주화항쟁에서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보'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1989년 남북작가회담 추진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돼 남북작가회담 제안한 것을 시작으로 통일 운동에도 적극 참여됐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특별 수행원으로 참석하여 기념만찬장에서 시를 낭송해 감동을 전했다.
최근에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으로 문화적 통일에 앞장서고 있다.
주요 수상 경력으로는 은관 문화 훈장, 노르웨이 뵨슨 문화 훈장, 제 1회 한국문학작가상, 제 1회 대산 문학상 시 부문, '만해 대상' 시 부문상, 단재상 수상, 영랑 문학상, 유심 문학상, 예술원상, 스웨덴의 시카다 문학상, 캐나다 그리핀 문학상 평생 공로상 등이 있다.
고은 시인은 민족예술인총연합 의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의장, '겨레말 남북 공동 편찬위원회' 상임위원장, 단국대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인사이클로피디어 브리태니카' 2008년 연감과 마키즈 명사 사전 등에 등재됐다.
[사진= 고은 공식 홈페이지 캡쳐]
김하진 기자 hajin07@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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