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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경민 기자]단편 영화 ‘격정소나타’의 감독 겸 연출을 맡았던 최고은 작가가 생활고로 사망한 가운데, 밝은 이면의 영화계의 적나라한 현실에 대한 잇따른 업계의 탄식이 터져나오고 있다.
최 씨는 지난달 29일 경기 안양 석수동의 월셋집에서 이웃 주민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사인은 생활고로 인한 것이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기 안양시 만안경찰서 측은 최 씨가 갑상선 기능 항진증과 췌장염을 앓다가 수일째 굶은 상태에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2007년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영화과를 졸업한 최 씨는 재학 중인 2006년 12분짜리 단편 ‘격정 소나타’를 선보여 평단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화려했던 평단의 찬사는 그의 생활고를 덜어주지는 못했다. 이후 최 씨는 영화 제작사와 시나리오 계약을 맺었지만 제작까지는 이어지지 못해 생활고를 떨치지 못했다.
최 씨 같은 생활고는 비단 소수의 일이 아니다. 1000만 관객이 드는 한국 영화 시장과 연예인은 수십억의 출연료를 받아가지만 영화나 방송 모두 제대로 된 수익 분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카메라, 조명 등의 스태프는 프러덕션 형태의 외주 업체로 일정 부분 고용안정이 이뤄지는 반면, 감독과 작가 등의 직종은 다수가 ‘프리랜서’ 계념 이다. 대형 영화 제작사 같은 경우에는 월급제 감독, 작가 같은 제도를 활용 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관련직종 종사자들은 일이 없으면 소위 말해 ‘백수’로 살아야 한다.
이런 감독과 작가의 현실에 대해 ‘해운대’를 연출한 JK필름의 윤재균 감독은 “감독이라는 직종이 외부에서는 화려하게 비쳐지지만 영화를 실패하면서 일이 없게 되면 막말로 무직자 신세로 전락한다”고 실정을 털어 놓기도 했다.
또 최 씨가 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2007년 이후 한국 영화계는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암흑기를 맞게 된다. 수 많은 영화가 제작이 중단되면서 자금난을 겪던 다수의 영화사들이 회사 문을 닫기 시작했다.
배우 김주혁은 당시에 대해 “출연을 확정 지었던 5편의 영화가 잇따라 자빠졌다”며 “나에게 문제가 있는게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많은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배우 조차 힘든 시기에 스태프들, 편당 회차를 놓고 일정 부분의 급여가 정해진 조명, 카메라 등의 스태프와 달리 작품의 성패에 따라 수익이 판가름 나는 작가들의 고충은 극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왕의 남자’ 등을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영화계 현실이 각박해지면서 중견 제작자들이 후배를 돕고 해야 하는데 너도 나도 힘들다 보니 그렇지 못한게 사실이다”고 전했다.
해외의 경우 ‘크리에이티브 집단’이라는 형태로 월급제 작가 시스템이 구축돼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방송작가를 제외한 영화계, 연극계에서는 아직도 프리랜서 형태다. 일이 없으면 한푼 수입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
‘방자전’을 통해 지금은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 오른 배우 송새벽 또한 연극무대 시절 “안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신문, 음식, 우유 배달에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연극 활동을 해 왔다”며 “다수의 배우들이 그렇듯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가 없다”고 고백했다.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은 8일 성명서를 통해 "창작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산업 시스템과 함께 정책 당국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영화 스태프들이 생존을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즈음인 2000년도의 연평균 소득은 337만원, 10년이 지난 2009년도 연평균 소득은 623만원으로 조사됐다. 조금 나아지기는 했으나 월급으로 치면 52만원이 채 되지 않는 액수로 여전히 최저생계비에도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영화 스태프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해외의 유수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아시아권에서는 한류 열풍을 일으키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한국 영화계의 현실은 열악하기만 하다.
[사진 = 최고은 작가의 유작이 된 ‘격정 소나타’ 중]
김경민 기자 fender@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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