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강지훈 기자의 인디스But구디스] 2012년의 시작과 함께 홍대신에 첫 선을 보인 혼성밴드 비밀리에는 여러모로 검정치마와 연관돼 있다. 비밀리에가 대중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지난해 4월 검정치마의 키보디스트 임유진의 솔로 프로젝트 야광토끼의 정규 1집 앨범 '서울라이트' 쇼케이스였고 비밀리에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멤버 역시 검정치마 드러머 정경용이다. 심지어 '비밀리에'라는 이름 역시 검정치마 조휴일이 선물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갓 첫 결과물을 내놓은 비밀리에의 심상은 온전히 프런트맨 혜령의 에고(ego)에 의존하고 있다. 자신을 '완전 듣보'라 정의하는 그녀는 비밀리에 정규 1집 앨범의 전곡을 작사작곡했고 매력적인 보컬로 비밀리에의 색깔을 뚜렷하게 차별화시키고 있다. 하얀 백지에 자신의 몸을 투사한 앨범 재킷과 CD 1장 외에는 모두 비밀리에 가려져 있는 그녀와의 대화를 청한 것도 결국 이 때문이다.
2004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게 뭘까'라고 고민한 게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됐다. 그 전까지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진짜 청자였다. '내가 할 수 있나' 하는 두려움에 섣불리 하지 못하고 있다가 한 번 해 보자고 결심한 게 그 때였다. 취미밴드를 1년 반 정도 하다 2005년 겨울에 (정)경용이를 만났는데 경용이가 들어오고 3-4개월 있다가 그 팀은 음악적 콘셉트 차이로 깨졌다. 흑역사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가 비밀리에의 시작이라 할 수도 있다.
비밀리에라는 팀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된 것인가.
검정치마 (조)휴일이가 지어준 거다. 휴일이가 '누나는 비밀이라는 단어와 어울려'라고 해서 비밀, 비밀하다 비밀리에라고 나와서 그냥 그걸로 할까, 이렇게 된 거다. 영화 '아멜리에'를 좋아하는데 어감도 비슷하고 예뻤다. 그런데 여자야구팀 비밀리에가 있더라. 내 이름과 같은 가수도 있어서 가명을 쓰라는 말도 들었는데 그러긴 싫고.
지난해 초에 비밀리에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라인업이 완성된건가.
(정)경용이는 원래 친했고 1명씩 영입한 셈이다. 2008년부터 실용음악을 전공한 학생들로 지인을 건너고 건너 추천받고 뽑았다. 기타치는 친구는 녹음하고 군입대해서 지금의 기타(김선태)는 공연용 세션으로 영입했다.
대부분의 팀들처럼 가요제나 레이블 오디션을 통한 데뷔가 아니다.
유재하든 어느 가요제든 내 음악을 받아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수상한 노래들과 내 곡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아예 시도를 해 보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주요 인디레이블에 데모를 보내긴 했는데 '대중과 인디 사이 어중간한 음악이다. 인디, 대중 어느 쪽을 겨냥하기도 애매하다'고 퇴짜맞았다. 오히려 그 얘기 듣고 오기가 생겨 더 내 마음대로 해 봐야지 하는 계기가 됐다.
신인 밴드들은 EP나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첫 선을 보이는 게 대부분인데 바로 정규 앨범이다.
나이가 있으니까 빨리 정규를 내야겠다는 조급증이 있었다. 또 곡은 2009년부터 계속 지어왔던 것들이라 빠른 시간 내에 정규 앨범을 구성할 수 있었다.
재킷엔 온전히 혼자뿐이다. 모두 자작곡이고 굳이 밴드가 아닌 솔로로 선보일 생각은 없었나.
앨범 디자인도 콘셉트도 내 중심으로 가다 보니 그런거다. 그 때는 김선태가 없었으니까 남2, 여2인 게 웃기더라. 아바도 아니고. 내가 피아노도, 기타도 연주자처럼 치지 못하는데 스스로 녹음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세션의 도움을 얻어 솔로로 나올 수도 있었지만 세션 보다는 밴드가 필요했다. 연주자들의 무언가도 내 곡에 녹여내고 싶다는 생각에 세션이 아닌 밴드 멤버들을 모았다.
첫 결과물이 나왔는데 소감이 어땠나. 아쉬운 점은 뭔가.
멤버들과 나이차가 많이 나는데 어린 친구들은 앨범이 나와 설레고 좋다는데 나는 이끌어야 한다는 불안감이 컸다. 좋기는 한데 리더다 보니까 부담감도 크고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음악적으로도 아쉬움이 크다. 기타를 이 부분에서, 피아노를 이 부분에서 등 부분적인 아쉬움이 있다. 악기들 각자의 존재감을 살리려 노력했다. 우리나라 밴드는 보컬 중심이지 않나. 산울림을 가장 좋아하는데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모든 악기들이 튀어나오는데 포인트를 뒀다. 하지만 멤버들이 머리를 모아도 뭔가 안 나오고 조율이 필요할 때 힘든 점이 있더라.
'비가 와요'를 타이틀 곡으로 삼은 까닭은.
'비가 와요'의 멜로디가 가장 대중적이라는 생각이다. 편곡 방식에서 대중성과 우리 색깔이 적절히 잘 섞인 것 같다. 겨울에 '비가 와요'가 안 어울릴 수도 있는데 오로지 음악으로만 생각했을 때 타이틀 곡으로 적합하다는 결론이다.
앨범이 나오고 시이나 링고와 비교하는 의견도 봤다.
목소리톤 때문에 비교되는 것 같다. 하지만 시이나 링고는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워낙 넓고 비슷한 방향은 아닌 것 같다. 누굴 따라하려고 음악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김윤아씨 목소리와 흡사하다는 말도 들었는데 계산한 건 없다. 늦게 태어난 게 죄지(웃음). 어머니랑 노래방 종종 가는데 내 목소리는 누구도 아닌 어머니 닮았다. 음역대가 왔다갔다하는 스타일을 좋아해서 멜로디도 그런 방향을 살려 고음대 올라갈 때 부각시키는 쪽이다.
음악인생의 출발이 됐을 가장 먼저 구입한 음반은 무엇인가. 가장 많은 영향을 줬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아티스트는.
현진영과 와와였던 것 같다. 그 다음에 심신, 이덕진 사다가 서태지와 아이들을 사면서 빠순이가 됐다. 팝은 머라이어 캐리 '뮤직박스'였던 것 같고. 소장한 음반 역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압도적으로 1위다. 라디오헤드도 다 갖고 있다.
이 앨범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시작점이다. 바람이 있다면 '2집을 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자' 그 정도가 목표다. '듣보'의 단계에서 비밀리에를 인지시키는 것이다. 웬만하면 곡 순서대로 들으시라고 주문하고 싶다. 요즘 앨범으로 듣는 분이 별로 없는 게 현실이지만 앨범을 1번부터 10번까지 쭉 들으시면 짜임새를 느낄 수 있으실 거다. 보컬이나 멜로디 위주만이 아닌 전체적인 악기구성을 유념해 들으시면 더 재미있을 것이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셨으면 한다. 요즘 K-POP이 대세라지만 기사를 보니 인디밴드들은 홍대, 상수에서나 알지, 이대만 가도 모른다고 하니. 좋다고 하든, 싫다고 하든, 욕을 하시든 들으시는 분들이 많아졌으면 한다. 지금은 평가될 기회조차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강지훈 기자 jhoon@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