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연예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MBC 수목드라마 '해를 품은 달'은 여진구와 김수현 두 남자 배우의 절묘한 이어달리기였다. 어린 배우 여진구가 예상치 못한 속도로 2012년 첫 지상파 3사 수목극 대전에서 '해를 품은 달'을 선두에 올렸다면, 사극에 첫 출전한 배우 김수현은 선두 유지에 그치지 않고, 놀라운 추진력으로 '해를 품은 달'을 진정한 승자로 이끌었다.
여진구는 2005년 영화 '새드 무비'로 데뷔해 '예의 없는 것들',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쌍화점' 등의 영화와 '연개소문', '일지매', '타짜', '자명고', '자이언트', '무사 백동수', '뿌리 깊은 나무' 등의 드라마까지 이미 화려한 경력을 지닌 명품 아역이다.
'해를 품은 달'에선 악동 같은 철 없는 세자 훤을 연기했다. 반항심으로 똘똘 뭉쳤지만 어린 연우를 만나며 사랑에 눈 뜬 훤이 내뱉는 대사는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표현이 떠오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유치했기 때문에, 그래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애절했다.
연우 역의 김유정과 더불어 아역들로도 찢어질 듯한 아픔을 끌어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 바탕에는 숱한 작품에서 다져진 '살아있는' 감성과 표현력이 있었다.
TV 스피커를 타고 낮게 깔리는 목소리와 분노에 차 부릅뜬 눈은 도저히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된 아이의 것이 아니었다. 여심은 크게 흔들렸고, 여진구의 나이를 믿지 않으려는 '현실 도피형' 누나팬들이 쏟아졌다.
김수현은 첫 사극이라고 했다. KBS 2TV 드라마 '드림하이'의 송삼동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김수현이었다. 제작발표회 때부터 왠지 커 보이던 곤룡포 때문에 김수현에겐 기대감을 품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아역들이 펼쳐 놓은 판에 성인 배우들이 뛰어들어 망치진 않을까 우려된다는 말이 많았지만 김수현은 특유의 한 쪽 입 꼬리가 올라가는 웃음으로 세간의 우려를 웃어 넘겼다.
중전 보경을 철저히 무시하다가도 "중전을 위해 내가 옷고름 한 번 풀지"라며 보경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냉정한 마음의 훤. 한편으로는 연우를 향한 연정을 잊지 못해 눈물 쏟는 훤. 지독하게 차갑지만 안아주고 싶은 여린 남자에 여성 시청자들은 일제히 미혹됐다.
여진구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건만 김수현은 이훤이란 동일한 인물로 여진구와 다른 매력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여진구가 만든 캐릭터에서 그치지 않았고, 자신만의 해석으로 비운의 왕을 그려냈다.
김수현은 2007년 MBC 시트콤 '김치 치즈 스마일'로 데뷔해 결코 연기 경력의 폭이 넓다고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갑절이 넘는 경력을 가진 김영애, 김응수와의 대면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성인 연기자로 넘어오며 자칫 흔들릴 수 있던 '해를 품은 달'의 중심을 잡은 건 오롯이 청년 김수현의 능력이었다. 하물며 과장된 연기를 지적 받던 민화공주 남보라마저도 김수현과 진실을 두고 마주앉은 장면에서 욕망과 후회의 이중적인 오열 연기를 펼쳐 그제서야 극찬 받기도 했다. 한 쪽이 어설펐다면 맥이 빠질 법한 장면이었으나 남보라가 김수현의 오열 연기에 상응하는 연기력을 발산한 것이다.
극의 흐름이나 매 장면이 최고의 완성도는 아니었던 '해를 품은 달', 그럼에도 국민드라마로 추앙 받을 수 있던 건 여진구와 김수현, 한 명이자 두 명인 이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진구(왼쪽)와 김수현. 사진 = 마이데일리DB-MBC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