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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김수현은 말을 천천히 했다.
질문과 답변의 틈에는 짧은 침묵이 있었다. 침묵의 시간 동안,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일(一)자로 붙인 채 김수현의 눈은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고 있었다. 신중했으며, 머릿속에 떠오른 느낌을 온전히 말로 옮기기 위해 고민했다.
'아, 이 사람은 참 깊구나'하는 게 김수현에게서 전해진 인상이었다. 왜 김수현이 이훤일 수 있었는지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었다.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비운의 왕 이훤에게 얼마나 몰입이 되었느냐는 질문에 김수현은 "몰입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얘기했다. 김수현은 이 말을 시작으로 단 한 번도 자신을 과시하거나 포장하지 않았다.
"감정을 잡을 때 대본에 많이 집중하는 편입니다. 슬펐던 기억을 떠올리는 방식도 있다고 하는데, 전 그게 잘 안되어서요. 극 안으로만 많이 몰입하는 편입니다. 이번 '해를 품은 달' 촬영 현장에서 감정을 잡을 때는 정은표 선배와 (송)재림이 형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고, 항상 제 옆에서 함께 하다 보니까 감정에 영향을 미칠 만큼 제가 많이 의지하기도 했습니다. 셋이 같이 우는 장면도 있었고요.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해를 품은 달'을 지켜보던 이들은 김수현의 말, 몸짓, 눈빛까지 이훤이 된 김수현의 모든 것에 큰 만족감을 얻었겠지만 김수현 자신은 달랐다.
연기에 만족했는지, 점수로 몇 점을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만족하지 않습니다. 점수로는 C+ 정도"
생각보다 낮은 점수였다. 그래서 김수현에게 자신의 연기 중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물었더니, 한참을 얘기한다. 차분한 어조로 자신이 맞닥뜨렸던 벽을 얘기한다
"사실 이번에 '해를 품은 달' 촬영을 하면서 제가 갖고 있는 연기의 한계를 느꼈어요. 벽에 부딪힌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왕처럼 살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명령을 하고, 또 굉장히 영리하게 기 싸움을 펼쳐야 하고 조선시대 정치 대신들과 싸워서 이겨야 하고, 그 사람들을 조정해야 하는 심리전, 한 수 두 수 앞을 보는 그런 연기를 했어야 하는데 모든 부분에서 제가 갖고 있는 에너지, 배우로서의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촬영 중에 좌절도 했었고 제 자신한테 실망도 했었죠.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고민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결국 끝까지 다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굉장히 멀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드라마의 인기가 높았던 것은 선배들이 잘 살려준 덕분입니다. 특히 몇몇 선생님들은 저를 연기로 아예 눌러버릴 수도 있었지만 저를 굉장히 믿어주시고, 또 밀어주셔서 그 덕분에 드라마가 잘 어우러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그 덕분에 드라마가 좋은 성과가 났고, 저 역시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게 됐고, 그리고 저로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들도 받았고요. 지금은 좋습니다. 기분이 굉장히 좋습니다"
김수현은 이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여진구에게 특별한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훤의 밝은 면을 그려달라는 부탁이었다.
"(여)진구가 연기한 어린 훤은 그 안에 상처를 받으면서 아픔을 가져가게 되는데 진구가 밝은 면을 보여줄수록 더 비극이 되고, 더 슬프게 되니까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아요"
여진구는 김수현의 당부처럼 어린 연우와의 사랑을 설렘으로 물들게 했다. 능숙한 연기력으로 그 사랑을 아프게 그릴 줄도 알았으며, 이 때문인지 오히려 김수현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여진구를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김수현에게 부담이 될 수 있던 목소리들이었다. 하지만 김수현은 "부담스럽지는 않았어요. 진구가 잘해줘서 기분도 좋고 고마웠어요. 오히려 진구한테 많은 힘을 얻기도 했었고요. 사실 그런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라고 전했다.
"아역에서 넘어오는 데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 사실 어쩔 수 없는 같아요. 예전에는 저도 아역이었으니까요. 당연히 아역들에게 적응이 돼 있을 것이고, 극 전체가 아역에서 성인으로 바뀌면서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당연히 아쉬운 부분도 많고, 그런 부분(연기력 논란)은 사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난 아역이 그린 시대를 사랑하게 됐으니까'란 것 같습니다"
김수현은 한가인과 연기를 하는 동안 주고 받은 감정을 설명하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정리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TV로 아역 분량을 보다가 갑자기 성인으로 바뀌었을 때 '아이고. 내 얼굴이 나오네' 그랬던 적도 있어요. (한)가인 누나랑 연기 호흡을 맞출 때, 처음에는 서로 굉장히 어색해서 말수도 없었지만 나중에 자연스럽게 편해진 뒤에는 연기를 하는데 굉장히 좋은 에너지, 좋은 호흡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래서 극 후반부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선 서로 전해지는 것들이 많았고, 그래서 전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연기력 논란은) 사람마다 시선이 다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김수현(위)과 한가인.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마이데일리DB]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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