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박찬호의 컷 패스트볼은 악마의 변화구로 불린다. 직구에 육박하는 구속이 나오는 컷 패스트볼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왼손 타자의 몸쪽으로 살짝 꺾여 떨어진다. 미국 무대에서 왼손타자에게 적지 않게 고전한 박찬호는 한국에서 컷 패스트볼로 왼손 타자 요리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 그러나 변화구가 그 특성을 살리지 못할 경우 무용지물이 된다. 이날 박찬호의 컷 패스트볼은 타자들에게 악마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경기운영능력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 구속 안 나오면 컷 패스트볼은 약발 떨어진다
박찬호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직구 구속이 145km를 심상찮게 넘긴다. 11일 청주 롯데전서도 박찬호의 직구 최고구속은 149km였다. 그러나 컷 패스트볼을 포함한 슬라이더의 최고구속은 139km에 불과했다. 직구 구속이 많이 나왔지만 평상시 박찬호의 컷 패스트볼 구속은 140km대 이상 나왔다. 결국 상대적으로 컷 패스트볼의 구속은 적게 나왔다. 때문에 타자들이 물리적으로 반응할 시간이 길었다. 꺾이는 각도가 적기 때문에 구속이 떨어질 경우 위력이 반감될 수 밖에 없다.
박찬호는 이미 1회 전준우에게 직구를 던져 홈런을 맞았다. 2회부터 본격적으로 변화구 비율을 높인 박찬호는 커브와 서클체인지업도 간간이 섞었지만 롯데 타자들은 당하지 않았다. 변화구 승부마저 어렵게 되면서 전체적인 경기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26개를 던진 슬라이더와 컷 패스트볼보다 21개를 던진 직구의 위력이 좀 더 좋았다.
▲ 변화구 돋보이게 하는 건 결국 직구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이날 박찬호는 직구를 투구수 86개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단 21개만 던졌다. 대신 예리하지 못했던 컷 패스트볼을 포함한 슬라이더를 29개, 서클체인지업 11개, 커브 10개, 투심패스트볼 15개를 던졌다. 직구가 적은 대신 예리하지 않은 변화구 승부를 자주하다 보니 롯데 타선을 전혀 압박하지 못했다.
박찬호가 직구를 왜 많이 안 던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결국 떨어진 변화구 위력을 살리기 위해선 직구를 많이 던질 필요가 있었다. 박찬호는 그간 투수 리드 면에서 자신을 편하게 해주던 신경현을 선호했고, 결국 신경현이 전담포수로 나섰다. 그러나 신경현은 11일 청주 롯데전을 앞두고 허리 통증으로 2군에 내려갔고, 당분간 박찬호는 최승환과 호흡을 맞추게 됐다.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최승환과도 좀 더 볼배합을 연구할 필요성이 재기되고 있다. 볼배합과 경기운영은, 결국 배터리의 충분한 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 평정심 잃지 말아야
이날 박찬호에게서 특이한 상황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답지 않게 플레이 하나하나에 예민하게 반응, 마운드에서 과도한 제스처가 많았다. 3회 자신의 실책이 기록됐을 땐 아쉬워하는 표정과 제스처가 역력했다. 심지어 경기도중 뒤를 돌아 내야수들에게 무언가를 지적하기도 했다. 평소 박찬호에게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만큼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속으로 평정심이 무너졌을 가능성이 있다. 4이닝 7피안타 6실점(5자책). 그렇게 박찬호는 한국 데뷔 후 최악의 피칭을 했다.
전반적으로 뭘 해도 안 풀리는 박찬호의 올 시즌 마지막 청주경기였다. 대전으로 옮겨 치르는 향후 일정에서는 기분 반전을 할 수 있을까.
[한국 데뷔 후 최악의 투구를 한 박찬호. 시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