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흔히 지도자들이 투수들에게 “1구 1구 버리는 공이 없어야 한다. 유인구에도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막상 경기를 치르다 보면 1구 1구에 온 힘을 쏟아 전력피칭을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국내 최고 투수 전문가 KIA 선동열 감독은 14일 목동 넥센전을 앞두고 “투수가 같은 변화구를 던져도 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던지고, 2아웃 만루 풀카운트에서 변화구로 삼진을 잡는다면 수준 높은 투수다”라고 단언했다.
▲ 코너에 몰린 투수들, 구종 다변화의 맹점
현대야구가 시간이 지날수록 투수보다 타자의 기술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타자들은 직구, 슬라이더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 구종 공략에는 애를 먹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공략하는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 체인지업, 커브에 이어 용병제도 도입 후 컷패스트볼, 싱커 등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가 국내에 상륙한 뒤에도 타자들은 커트 기술로 대응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국내 투수들은 직구외에 자신의 주무기 변화구 1개 정도를 완벽에 가깝게 구사할 경우 1군에서 뛸 수 있다. 하지만, 타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직구+변화구의 단순한 메뉴얼로 타자를 상대하기가 버거워지고 있다. 투수들이 점점 코너에 몰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수들은 자신이 가장 잘 던질 수 있는 변화구 외에 점점 변화구 구종을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선동열 감독은 “과거보다 투수들이 던지는 공이 많아졌다. 하지만,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구종을 모두 완벽하게 구사하는 투수는 국내에 별로 없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직구만 제대로 던지면 10승, 변화구 1개를 제대로 던지면 15승, 변화구 2개 이상 제대로 던지면 20승”이라고 덧붙였다. 누구나 1군에서 뛰는 투수는 직구와 주무기 변화구 정도는 제대로 구사한다고 하지만, 선 감독은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구종 하나라도 제대로 던지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현역 시절 직구와 슬라이더만으로 한국과 일본을 호령했던 그의 말은 일리가 있다.
▲ 의미 없는 공은 제구 난조로 이어진다
선 감독이 말하는 ‘제대로 던지는 공’ 혹은 ‘의미 있는 공’은 무슨 뜻일까. 선 감독은 “나는 현역 시절 카운트를 잡는 슬라이더, 유인구로 사용하는 슬라이더, 승부구로 사용하는 슬라이더를 모두 조금씩 다르게 던졌다”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선 감독의 말은 유인구를 던져도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즉, 유인구를 던져도 스트라이크 존에서 크게 벗어날 경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다양한 변화구를 던져도 스트라이크 존에서 벗어난다면, 소용이 없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국내 타자들의 선구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예를 들면, 투수가 몸쪽 직구로 타자를 돌려세운다고 할 경우 타자를 바깥쪽으로 유인하는 공을 잘 던져야 한다. 선 감독은 “바깥쪽 유인구가 터무니 없이 벗어날 경우 몸쪽을 찔러도 효과가 반감된다”라고 했다. 여기서 바깥쪽 유인구의 의미는 바로 ‘몸쪽 직구로 삼진을 잡기 위해서’이다. 타자가 바깥쪽 공략에 현혹돼 몸쪽 코스에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바깥쪽 유인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넣을 듯 말 듯 하게 던져야 몸쪽 승부구 직구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을 안 뒤 변화구 구종을 추가한다면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다는 게 선 감독의 생각이다. 그러나 선 감독의 시각에 따르면 국내에 그런 투수는 거의 없다고 했다. 선 감독은 “구종을 늘릴 생각을 하지 말고 하나라도 제대로 던져야 한다. 괜히 다양한 변화구를 던져서 볼이 되면 결국 투수가 불리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김병현의 사례, 구종 다변화 속 제구난조
14일 목동에서 선발로 나섰던 김병현의 경기 후 코멘트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컨디션이 좋아서 내가 던질 수 있는 모든 공을 던진 게 화근이었다”라고 말했다. 투수는 일단 구사할 줄 아는 구종을 실전에서 구사하려는 본능이 있고, 컨디션이 좋을 경우 더더욱 그러는 경향이 있다. 1일 부산 롯데전 이후 12일을 쉰 김병현의 몸상태는 본인도 좋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4볼넷 7피안타 패전이었다.
김병현은 이날 직구 98개의 볼을 던져 5이닝을 막아냈다. 56개의 직구 외에 슬라이더 24개, 체인지업 9개, 투심패스트볼 5개, 커브 4개를 던졌다. 하지만, 실제 모든 구종이 제대로 제구가 되진 않았고, KIA 타자들의 먹잇감이 됐다. 변화구가 타자의 범타 혹은 헛스윙을 유도하지 못하자 되려 직구를 통타당하기도 했다. 선 감독의 시각에 따르면 이날 김병현은 분명 의미 없는 공을 많이 던졌고, 지난 1일 부산 롯데전 7볼넷에 이어 다시 한번 제구난조로 무릎을 꿇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구종에 일일이 의미를 부여해 완벽한 제구력을 뽐낼 경우 메이저리그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선 감독은 단 1~2개의 변화구라도 완벽하게 습득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언젠가 많은 투수에게 그 의미를 부여하는 날이 온다면, 투수들의 진정한 역습이 시작될 것이다.
[선동열 감독의 투구 모습(위). 제구난조로 14일 패전투수가 된 김병현(아래) ]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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