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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토사구팽(兎死狗烹),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어져서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지금 MBC '무한걸스'의 상황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고사성어는 없을 듯 하다.
지상파채널 MBC와 케이블채널 MBC에브리원에서 함께 방송되던 '무한걸스'는 오는 20일부터 MBC에브리원에서만 방송된다. MBC가 노동조합 파업으로 정상 방송에 차질을 빚던 지난 6월 17일, MBC에 긴급 투입된 '무한걸스'는 두 달 만에 원대 복귀하게 됐다. 복귀지만 사실상 지상파 퇴출이다. '토사구팽'이 따로 없다.
애당초 '무한걸스'가 MBC에 투입된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시청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MBC 대표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파업으로 인해 장기 결방 중인 상황에서 '무한걸스'가 '땜질용'으로 투입된 것 아니냐는 반감이었다.
사실 '무한걸스'는 '무한도전'과 다른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투입됐다. 그렇지만 '무한걸스'의 지상파 투입은 파업 의지를 꺾지 않고 결방 중이던 '무한도전'의 상황과 자연스레 비교됐다. 게다가 지상파로 온 후 기껏 꺼낸 카드가 '무한도전'의 인기 아이템 따라하기다 보니 마치 빈집에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반감은 곧바로 저조한 시청률로 이어졌다. 지난 2007년 출범 이후 나름 MBC에브리원의 대표 예능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던 '무한걸스'였지만 지상파에선 애국가 시청률로 철저히 외면 받았다.
'무한걸스'만의 색깔도 잃어버렸다. 망가지길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 출연자들이 거침없는 애드리브와 걸쭉한 입담을 쏟아내는 게 '무한걸스'의 매력이었다. 그러나 '무한걸스'는 지상파에서 스스로도 낯설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멤버들도 "수위가 많이 낮아졌다", "너무 예뻐지려고 한다더라"라며 '무한걸스'의 퇴색을 인정했다.
결국 '무한걸스'는 지상파로 건너와 상처만 입은 채 고향 MBC에브리원으로 돌아가게 됐다. 무너진 '무한걸스'의 책임을 제작진이나 출연진에게 돌릴 수만은 없을 것이다. '무한걸스'의 MBC 투입과 퇴출의 결정은 제작진이나 출연진의 의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여러 시청자들도 파업 상황만 막아보려고 '무한걸스'를 임시방편으로 이용했다며 MBC의 태도를 지적했다.
어쩌면 '무한걸스'에겐 MBC에브리원으로 돌아간 게 잘된 일일는지 모른다. 제자리를 찾은 것이고, 시청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을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대로 생각해볼 여지도 있다. '팽(烹)' 당한 건 '무한걸스'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무한걸스'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비추었을 때, 프로그램을 대하는 태도, 더 나아가 그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시청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무한걸스'가 아닌 MBC가 시청자들로부터 '팽(烹)' 당할 수도 있어 보이는 이유에서다.
이제 '무한걸스'가 떠난 자리에는 19일부터 '승부의 신'이 투입된다. '승부의 신'은 '무한도전'의 '하하vs홍철'에서 모티브를 따온 프로그램이다.
['무한걸스' 멤버들(위)과 MBC에서의 마지막 방송 모습. 사진 = MBC 제공-MBC 방송화면 캡처]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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