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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경민기자]“걸그룹으로 알고 댄스 연습했는데, 사장님이 밴드로 데뷔 준비하라고 악기 배우래요”
한 국내 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 하경은양(17, 가명)이 베이스 기타 레슨을 받기 위해 학원을 찾았다. 하 양은 어려서부터 댄스 및 연기 학원을 다니면서 연예인의 꿈을 키워왔다. 유명 기획사 오디션을 수도 없이 찾았고, 결국 지금의 기획사에서 걸그룹으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 양에게 2개월 전 뜻밖의 통보가 전해진다. 걸그룹 데뷔는 취소하고 4~5인조로 구성된 걸밴드를 하자는 것이다.
하 양의 소속사는 이에 동의하지 못한 연습생 일부를 정리하고 인터넷을 통해 공고를 냈다. “2013년 데뷔할 걸밴드 멤버를 찾습니다. 초보도 가능합니다”였다. 악기에 문외한이던 하 양은 결국 그 동안 해 왔던 춤 연습을 뒤로 하고 더운 여름 생소한 베이스를 손에 잡고 데뷔의 꿈을 꾸고 있다.
악기를 다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아해 할 대목이다. 수년간 악기를 배워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데, 내년도 데뷔를 예정하고 있으면서 이제 악기를 가르친다. 그 이유는 가요계의 트랜드 변화와 함께 이를 쫓기만 하는 국내 가요기획자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K팝 열풍으로 국내 가요계는 일대 성수기를 누리고 있다. 너도나도 아이돌 그룹 열풍에 동참했고, 불과 3년 사이에 70여개 가까운 팀이 데뷔했고, 활동 중이다. 하지만 2012년이 되자 K팝 시장은 성장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상위 10여개 팀이 K팝 열풍으로 큰 돈을 벌고 있지만, 나머지 그룹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앞질러 버린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일부 기획사들은 데뷔 예정이던 아이돌 그룹을 취소 혹은,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밴드라는 코드를 도입했다. 버스커버스커의 인기와 MBC ‘나는가수다’, KBS 2TV ‘톱밴드’의 인기 밴드 음악에 대한 관심이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데뷔한 FT아일랜드와 씨엔블루 같은 아이돌밴드의 인기도 한 몫했다. 하 양이 소속된 기획사 또한 포화상태인 ‘제2의 소녀시대’ 보다는 ‘여자 씨엔블루’의 노선을 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연주력’의 문제는 어떻게 될까? 밴드의 특성상 악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요관계자는 이런 ‘연주력’ 문제가 “데뷔에는 걸림돌이 될 수 없다”고 전한다. 이들이 타깃으로 삼은 국내 음악프로그램은 단 한 곳에서도 ‘라이브’ 무대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
이 관계자는 “음반 녹음의 경우 세션을 투입해서 진행하고, 만약 라이브 공연을 하더라도 어려운 프레이즈 등은 세션의 도움을 받는다”라며 “주무대가 되는 국내 음악프로나 행사의 경우 MR(Music Recorded, 음악만 녹음된 방송용)을 이용하기 때문에 굳이 연주를 할 필요가 없다”고 실상을 전한다.
실제로 국내 가요무대에 서는 수 많은 밴드들은 직접 연주를 하지 않고 MR만을 이용한다. 소위말해 무대에 들고 나오는 악기는 ‘폼’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연예인 공화국이다. 과거 ‘대통령’이 꿈이라고 외치던 초등학생들은 이제는 ‘연예인’을 선망직업으로 꼽는다. 국내최대규모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엠넷 ‘슈퍼스타K4’에는 200만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전국민 25명 중 1명이 지원한 셈이다.
하지만 국내 일부 연예기획사들의 그야말로 후진적이다. ‘돈 될만한 시장’만 쫓아다니는 꼴이다. 하 양 또한 어려서부터 꿈꿔오던 댄스가수가 아닌 악기를 들고 무대에 서게 됐다. 무계획으로 주먹구구식으로 배출되는 이들이 과연 ‘아티스트’라는 범주에 속할 수 있을까?
기획사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꿈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는 하 양은 사장님의 변덕으로 오늘도 기약 없는 데뷔를 위해 악기레슨을 받고 있다.
[밴드음악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씨엔블루. 사진 = FNC뮤직 제공]
김경민 기자 fender@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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