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민성의 스타★필(feel)] 자비(慈悲)가 아닌 자비(自備)로 우뚝 선 천재 감독 '피에타' 김기덕
때론 무학(無學)이 무한상상(無限想像)의 원천이 된다. 최근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을 보면 그렇다. 정규 영화교육을 전혀 받지 않았던 그는 공장 노동자, 해병대 부사관, 신학생, 거리 화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영화적 토양을 스스로 쌓아올렸다.
지금은 아시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제적 감독이지만 오랫동안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단아로 외면받아야 했다. 1996년 '악어'로 데뷔한 후 파격적인 내용과 충격적인 영상, 초저예산, 단기간 영화 제작 방식, 지나치게 잔혹한 장면을 넣은 스타일 등으로 격렬한 찬반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독특한 미장센에 감화되어 톱스타들도 노개런티로 흔쾌히 출연했는데 2002년 '해안선'에 출연했던 장동건 역시 그러했다. 샤방한 얼굴로 농구공에 튕기고 청진기를 휘날리던 미남 장동건이 광기 어린 군인으로 변신했을 때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번 영화 '피에타' 역시 남녀 주인공인 이정진, 조민수 또한 노개런티로 흔쾌히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 이정진이 분한 상도는 사채업자의 청탁으로 무자비하게 돈을 받아내는 잔인한 남자로, 어느 날 엄마라고 우기며 찾아온 여자 조민수에 의해 일상이 흔들리며 비극적인 파국으로 내닫는다.
지금은 세계가 열광하는 김기덕 감독이지만 그의 과거는 작품만큼이나 평탄치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집안 형편상 공장에 취직한 그는 20살에 해병대에 지원해 5년간 부사관으로 복무했다. 제대 후 한국 남산의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전도사로 일하며 신학교를 다녔다. 평소 그림에 대한 소질과 조예가 남달랐던 그는 서른 살이 되던 해 프랑스 파리로 떠나 거리 화가로 3년간 떠돈다. 프랑스에서 '양들의 침묵', '퐁네프의 연인들' 등을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꾼 그는 1993년 한국으로 돌아와 '화가와 사형수'로 영상작가교육원 창작대상, 1995년 '무단횡단'으로 한국진흥공사 시나리오 공모대상을 수상하는 등 각본가로 활동하다 1996년 '악어'의 연출, 각본, 미술을 맡으며 감독으로 정식 데뷔한다.
이후 1997년 '야생동물 보호구역', 1998년 '파란 대문', 1999년 '섬', 2000년 '실제상황', 2001년 '수취인 불명', 2002년 '나쁜 남자', '해안선', 2003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2004년 '사마리아', '빈집', 2005년 '활', 2006년 '시간', 2007년 '숨', '아름답다', 2008년 '비몽', 2011년 '아리랑'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했으며, 한국 영화사상 특히 베니스 영화제, 칸 국제영화제(주목할만한 시선상-아리랑), 베를린국제영화제(은사자상-빈집) 등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해외에서의 화려한 수상과 별개로 김기덕 감독의 개인사는 유명해진 후에도 편치만은 않았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괴짜 천재 감독으로 칭송됐지만 정작 모국에선 인정받지 못하고 주류 영화계에서 배척당했고,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의 절망과 먹먹함은 적막한 산골, 누추한 집에서 칩거하며 혼자 연기하고 연출을 맡은 영화 '아리랑'을 통해 발표되기도 했다.
그의 영화들은 모두 그 자신을 반영하고 있다. '피에타' 또한 청계천 일대 공장에서 허드렛일로 젊은 시절을 암울하게 살았던 그가 담겨 있다. 초졸 학력에 별 볼 일 없는 청계천 출신, 아웃사이더로 비주류에 머물러 있었던 그는 그 모든 고난과 시련을 영화에 투영해냈다. 그리고 한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독창적인 영상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과거로 돌아가지 말고, 미래를 기다리지 말고, 현재를 놓치지 말자"는 명언을 남긴 김기덕 감독. '피에타(Pieta)'는 이탈리아어로 '자비(慈悲)를 베푸소서'라는 뜻이지만 김기덕은 험난한 길을 돌고 돌아 스스로 준비하고 갖춘 자비(自備)로 세계 영화계에 우뚝 섰다.
[김기덕 감독(위), '피에타' 포스터. 사진 = NEW 제공]
김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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