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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부산 배선영 기자] 영화 '터치'를 보고 있으면 김지영이 한없이 아깝다. 저런 재능을 가진 여배우가 어째서 좁은 범위 속에서만 활용돼 왔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서다. 그러니 진부한 표현으로 '터치'는 김지영의 재발견을 가능케한 작품이다.
김지영을 '저평가된 배우'라고 한 민병훈 감독은 6월의 어느 날 몇 년 만에 문득 전화를 걸어 "작품 하나 썼는데 바로 찍을 거야. 근데 네가 해야할 것 같아"라고 했다. 마침 아이 키우는 재미에 빠져 있던 김지영은 "네? 저 애 키우느라 지금 쉬고 있는데"라고 답했다. 민 감독은 "그건 당신 사정이고"라며 막무가내였다. 결국 김지영은 시나리오를 읽었고, 보는 순간 가슴이 쿵쾅거렸다. 너무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반면 두려워서 피하고 싶기도 했단다. 한 시간을 손톱을 물어 뜯으며 고민하다 결국 상대 배우이자 민병훈 감독의 절친한 지기, 유준상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솔직히 도망가고 싶어요. 2년이란 시간을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지냈는데 이 작품으로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싶진 않아요. 그런데 욕심이 나기도 해요."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으니 유준상은 "운명"이라고 말했단다. "내가 선택한 이유도 그거야. 민병훈 감독이 내 친구이기도 하지만, 이 작품은 운명으로 받아들여야할 것 같았어. 수원(극중 김지영 배역 이름)은 아마도 네가 해야할 몫인 것 같아."
이후 더 고민을 하던 김지영은 결국 민병훈 감독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고 2시간 만에 만나 덜컥 출연을 확정지었다. 그때부터 고생은 시작이었다. 김지영은 막상 수원이 된 촬영기간은 힘들지 않았지만, 수원이 되가는 준비 과정이 무척 힘들었다고 말했다.
4일 오후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을 몇 시간 앞두고 부산 해운대 그랜드 호텔에서 김지영을 만났다. '터치'의 숨가쁜 촬영 현장 분위기를 털어놓았다. 고통이자 행복이었던 시간에 대해 김지영은 "찍는 그 순간은 오히려 훅 지나갔어요. 본능적으로 찍었죠. 정신없이 태풍이 불어닥치듯 찍어냈어요. 이성이 남아있던 준비 기간이 제게는 더 고통의 시간이었죠"라고 말했다.
김지영이 고통일 수 있는 수원을 강하게 욕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수원은 삶의 바닥으로 향해 가는 연약한,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견디는 강인한 여인이다. 차마 그 인생을 살아내기 힘든 버거운 존재이기도 하다.
"여배우라면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역할이고 거부하기 힘든 작품이죠. 저한테 그 기회가 온 것에 감사하고 있어요. 감독님이 저를 '저평가된 배우'라고 하셨죠. 감독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끔 그렇게까지 못 끌고 나간 제가 민망했어요. 그러나 동시에 그렇게 평가해주면서 저를 높여주시는 감독님께 감사했죠. 기회가 온다고 해도 준비가 많이 돼 있을 때 와야 호흡이나 박자가 맞고 그 기회도 표현이 되고 이뤄지는 거잖아요. 궁합이 맞아야 하는데 그동안의 난 준비가 덜 돼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반성도 했고. 그러나 동시에 아직 나에게 올 많은 기회들이 있고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 기회들을 놓치지 말아야 겠구나. 나는 보여줄 것이 많은 배우가 아닌가 라며 저 자신한테 기대를 걸어보기도 했어요."
'터치'의 김지영을 보고 있으면, 그녀의 가능성에 확신이 생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브라운관의 그녀가 더 익숙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돌이켜보면 '전원일기' 복길이로 시선이 고정된 탓이다. 그러니 복길이는 김지영에게 애증의 존재일 수 밖에 없을 듯.
"과거에는 어린 마음에 원망도 해봤고, 그 작품으로 놓친 기회들을 놓고 안타까워하고 답답해하기도 좌절도 했지만요. 그건 모두 제 핑계에 불과하죠. 복길이는 절 배우로 성장하게 만들어준 학교였고 동시에 인생의 학교이기도 했어요. 온 국민에게 저를 각인시켜준 작품이잖아요. 배우가 특별한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어진다는 것은 영광이죠. 많은 이들에게 제가 배우로서 기억될 수 있게 해준 끈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 인연에 너무나 감사드려요. '전원일기'도 그리고 '터치'도 결국은 제 운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터치'에서의 수원을 연기할 때도 그녀가 닥친 모든 상황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였어요.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이 됐고 체득된 인자들이 제 몸에 고루 심어졌죠. 아주 짧게 그러나 격정적인 한 여름 밤의 꿈과 같은 시간이었어요."
그녀의 헐떡이는 숨, 뱉을 수 없는 비명, 참아도 터져나오는 눈물이 부산의 관객을 매료시킬
김지영의 '터치'는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돼 첫 공개된다.
[김지영. 사진=민병훈 필름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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