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축제니까 즐기면서 해야죠.”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가 열린 지난 7일 잠실구장. 두산 김현수는 예전 병살타 악몽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축제니까 즐겨야 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다른 선수, 양팀 감독의 의견도 비슷했다. 4일이 흘렀다. 두산은 벼랑 끝에 몰렸고, 롯데는 1승만을 남겨뒀다. 두 팀의 운명이 엇갈린 이유는 결국 롯데가 두산에 비해 늘 하던대로 야구를 더욱 즐겁게 했기 때문이다.
▲ 즐거운 롯데 덕아웃
롯데 양승호 감독은 옆집 아저씨 같다. 4월 파죽지세로 선두에 올랐을 때도, 9월 말 최악의 나날을 보냈을 때도 기자들을 보면 웃는 얼굴이었고 선수들에게 절대 부담을 주지 않았다. 양 감독은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다”라며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데만 신경을 쓴다. 경기 전 부진한 선수들에게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푸는 것도 그의 몫이다.
9월 말 7연패 당시 롯데 덕아웃 표정은 어두웠다. 하지만 부정적인 마인드로 걱정을 하는 선수는 보지 못했다. 설령 걱정이 되더라도 덕아웃에선 최대한 티를 내지 않았다. 8일 1차전을 승리한 뒤 9일 잠실구장 롯데 덕아웃은 축제 분위기였다. 경기 전 연습을 하는 선수들도, 덕아웃을 오가며 준비를 하는 선수 모두 표정도 밝았고 웃음과 농담도 들렸다.
사실 롯데도 1차전 실책 4개를 범하며 지옥까지 갔다가 천당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기 죽는 티가 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부정적인 기류란 전혀 없었다. 정말 가을축제를 즐기자는 자세였다. 특히 전체적인 타격감이 올라오면서 타자들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롯데 특유의 흥이 올라있다. 강민호의 부상에도 용덕한을 비롯한 하위타선의 타자들이 펄펄 날고 있다.
▲ 축제를 즐기지 못한 두산
김현수의 말과는 달리 1~2차전서 두산은 어딘가 모르게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였다. 홍상삼은 2경기 연속 결정적인 홈런을 맞고 고개를 떨궜고, 큰 경기 경험이 적은 김재호는 2차전 결정적인 상황에서 실책을 범했다. 마치 롯데가 몇 년 전 가을잔치를 즐기지 못하고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유사했다. 두산은 지금 경험 부족한 선수들이 큰 경기를 즐기지 못하고 있다.
김진욱 감독도 김동주, 고영민을 빼고 젊은 선수들의 패기를 믿겠다고 했지만, 2차전 패배 후 두 사람이 없는 게 아쉽다고 실토했다. 4번타자 윤석민에게 번트를 대게 한 건 바꿔 말하면 두산이 여유가 없다는 것과 같다. 과도한 긴장은 몸의 경직으로 이어질뿐, 야구를 잘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산은 그걸 알면서도 1~2차전서 불펜의 약세로 역전패하며 분위기가 떨어졌다.
▲ 포스트시즌은 보너스
정규시즌 막판 한 야구관계자는 “포스트시즌은 보너스 게임이다. 한 시즌 농사는 정규시즌으로 끝이다. 포스트시즌은 즐긴다는 마음으로 하는 팀이 이긴다. 어차피 각 팀 전력은 종이 한장 차이이지 않나”라고 웃었다. 정규시즌을 중시하는 일본과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선 한국시리즈 우승이 정규시즌 우승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다. 과거에도 이게 선수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됐다. 그러다 보니 과거엔 포스트시즌은 ‘죽기 살기’ 그 자체였다.
세월이 흘렀다. 예전 8~90년대와는 달리 요즘 선수들은 승부를 즐길 줄 안다. 그런데도 정규시즌과는 스케일이 다른 관중의 응원과 함성, 단기전의 특성인 단 한순간 승부처 흐름 헌납이 패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한번 평정심이 무너진 팀이 속절 없이 무너지곤 한다. 2009년과 2010년 준플레이오프서 두산에 역스윕을 당한 롯데도 그랬었다.
롯데는 지난 4년간 가을잔치를 치르면서 내성이 생겼다. 즐기는 게 최고라는 걸 몸으로 익혔다. 롯데도 여전히 약점이 있다. 언제 흐름이 두산으로 넘어갈 지 모른다. 두산도 허무하게 무너질 전력이 아니다. 133경기 승률이 리그에서 세번째로 높았던 팀이 두산이다. 3차전을 앞둔 두산에 가장 필요한 건 늘 하던대로, 즐기는 야구다. 롯데는 이미 가을축제를 즐기며 2경기를 가져갔다.
[준플레이오프 2차전 후 상반된 표정을 짓는 롯데와 두산 선수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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