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조인식 기자] 선수생활의 전환기. 이승호(31)가 프로 생활의 시작처럼 신생팀을 위해 마운드에 오른다.
NC는 8개 구단으로부터 보호선수 20명이 담긴 명단을 전달 받은 뒤 15일 각 구단별로 보호선수 외 1명씩 지명을 완료, 이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통보했다. NC가 지명한 8명의 선수 가운데는 롯데 자이언츠의 좌완 이승호도 포함돼 있었다.
군산상고 출신의 이승호는 연고구단이던 쌍방울 레이더스의 2000년 1차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1999시즌을 끝으로 쌍방울이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면서 쌍방울 선수들을 그대로 받아 창단된 신생팀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하게 됐다.
이승호는 데뷔전부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강병철 감독은 신인이었지만 1차지명을 받은 유망주 이승호를 중용했다. 데뷔전에서 위력적인 빠른 볼을 선보이며 세이브를 올린 젊은 좌완 이승호는 데뷔 첫 선발 등판에서 승리를 챙겼다. 이는 올해 임치영이 선발 데뷔전에서 승리를 거두기 이전까지 SK 신인의 유일한 선발 데뷔전 승리였다.
이승호는 자신의 데뷔 시즌이던 2000년을 10승 12패 9세이브, 평균자책점 4.51의 성적으로 마감했다. 후반기에 난타당하며 기록이 나빠지기도 했지만 전반기 맹활약은 충분히 밝은 미래를 그리게 했다. 기량을 인정받아 시즌 중에 열린 시드니 올림픽에도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한 이승호는 한국의 동메달 획득에도 기여했고, 신인왕도 당연히 이승호의 차지였다.
그러나 체구가 작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선택이었던 역동적인 투구폼은 부상을 불러왔다. 이승호는 두 번의 수술(2005년 왼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 2006년 왼쪽 어깨 회전근 수술) 이후 긴 재활을 거쳤다. 2005년 이전까지 세 번이나 두 자릿수 승리를 따냈던 화려한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국 이승호가 승리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은 보람은 있었다. 2005년 단 3경기에 출장한 뒤 1군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승호는 2008년 복귀해 불펜에서 힘을 보태며 SK의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에 일조했다. 시즌이 끝난 뒤에는 WBC 대표팀에도 선발되며 태극마크를 다는 기쁨을 다시 맛봤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FA가 되며 롯데로 팀을 옮긴 이승호는 올해 부침을 겪었다. 함께 롯데에 합류한 정대현과 더불어 롯데 마운드에 힘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거액을 안겨준 팀의 기대를 100%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이승호는 많은 기대를 받던 FA에서 근 1년 만에 팀의 주요 선수 20인에도 들지 못한 처지가 되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팀을 옮기게 됐다. 선수생활의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이제 서른을 훌쩍 넘긴 이승호에게는 이번 NC행이 팀의 주축으로 활약할 수 있는 실질적인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분명 롯데 시절보다 중요한 시점에 마운드에 오를 기회는 자주 주어질 것이다. 한 NC 관계자는 이승호를 영입한 것에 대해 "이승호와 송신영 같은 투수들은 즉시전력감으로 보고 데려왔다"고 밝혔다. 미래를 바라보는 NC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현재도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팀이 이승호에게 바라는 것은 젊은 투수들이 성장할 수 있는 2~3년 뒤까지 마운드의 주축으로 굳건히 팀을 지켜주는 것이다.
신생팀의 마운드를 이끌며 스타가 된 이승호. 선수생활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이승호가 입고 있는 유니폼도 신생팀의 유니폼이다. SK의 푸른 유니폼을 입을 때의 강속구는 풍부한 경험으로 변했다. 누군가는 위기라고 하지만 숱한 위기를 겪었던 이승호였기에 위기라고만 여길 수는 없다.
[이승호.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조인식 기자 조인식 기자 nick@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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