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그래. 인정하고 들어가자. 영화 ‘돈 크라이 마미’의 만듦새는 그닥 정교하지 않다. 김용한 감독이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는 점을 감안해도 허술한 지점은 더러 발견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봐야할 의미있는 영화다.
올해는 유독 성폭행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았다. ‘돈 크라이 마미’ 외에도 ‘공정사회’가 있었고, ‘나쁜피’라는 다소 과격한 영화도 있었다. 이들 작품은 모두 피해자의 분노가 뒤얽힌 복수극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폭행이라는 범죄에 분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도가니’가 있었다. 흥행이 안 될 것이라는 대부분의 예측을 뒤엎고 이 영화는 전국 500만에 가까운 관객(영진위 기준 460만)이 봤다. 개봉 시점은 거의 1년이 늦어졌지만, ‘돈 크라이 마미’는 사실 ‘도가니’보다 앞서 시나리오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작품으로 연출에 데뷔한 김용한 감독은 험난했던 제작환경부터 그가 왜 성폭행 범죄, 그것도 미성년자의 성폭행 범죄를 꺼내들었는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굉장히 힘들었다. 우리 대본이 2009년에 쓰여졌으니 ‘도가니’ 보다 시작은 빨랐다. 투자사에 돌렸을 때 ‘대본은 좋은데, 누가 성폭행을 보겠나’ 하더라. 상업영화가 아니라는 거지. 그런데 지금은 성폭행 소재가 이슈화된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2년을 투자를 받지 못하다 보니 처음 20억짜리 대본을 10억 이하의 예산으로 찍어야 했다. 누락되는 신들이 많이 생겼다. 그나마 가까스로 유선 씨가 캐스팅 됐고 자신의 개런티를 투자해주기도 했다. 내 입장에서는 한 없이 은인이다. 여기에 느닷없이 대본이 슬림해지다 보니 하중이 배우에게 갈 수밖에 없기도 했다. 배우의 연기로 승부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다.
-그런데도 왜 성범죄였나?
기사가 매일 하루에 한 건 씩 나온다. 오래된 기억을 들추면 1991년도에 김부남 사건이 있었다. 서른 살 먹은 여자가 50대 남자를 살해한 사건인데, 그 여자가 9살 무렵 자신을 성폭해한 남자를 다시 찾아 복수를 한 사건이었죠. 김부남이라는 분은 결혼도 했고 세월이 한참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21년 동안 트라우마가 해소되지 못했던 거다. 당시 굉장히 이슈가 됐었고, 김부남의 형량을 줄여달라는 운동도 벌어졌다. 그런가하면 92년도에는 김보은 김진관 사건도 있었는데 비슷했다. 김진관은 김보은의 남자친구였는데 이 김보은이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로부터 강간을 당했었던거다. 바로 그 아버지를 둘이 죽인 사건이었다. 그런 기저에 깔려있는 기억들을 돌이키고 또 최근에는 밀양 여중생 집단 강간 사건까지도 접하게 되면서 어쨌든 한번은 다뤄야할 소재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영화제작을 결심하면서 자연스레 실제 사건과 관련된 분들도 만났을 텐데
피해자를 직접 만나기는 너무 힘들었다. 반면 가해자를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른 사건들과는 다른 풍경이다. 가해자들은 생각보다 피해자들의 정신에 입힌 상처에 공감하지 못한다.
- 감독 역시도 남성인데, 피해자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나.
개인적으로는 여자들에 둘러싸여 살아왔다. 동생도 여동생만 있고 친인척 대부분도 여자들 뿐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자, 즉 약자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살면서 보면 똑같은 일을 해도 여자들에게 주어진 불평등한 대우들이 많더라. 직장생활도 잠깐 했는데 같은 일을 해도 성별의 차이만으로 월급도 달랐다.
- 피해자의 가정을 이혼한 엄마와 딸로 설정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딸이 겪는 아픔에 아버지를 배제한 느낌이랄까.
터울이 있는 막내동생이 실제로 이혼을 하고 혼자 딸을 키운다. 이혼 전후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더라. 박살이 난다고 할까. 그때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 개인적 경험이 투영된 결과인 것 같다. 동시에 이 소재를 다룬 나의 시선이 위로하고 이해하고 걱정하는 느낌인 것은 내가 오빠이면서 부모이기 때문이고.
- 실제 가해자들을 만나보았다고 했는데, 어떻던가?
남자아이들은 성경험을 마치 무용담처럼 이야기 한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슬프다. 성범죄에 있어서도 죄의식이 없다. 영화에서도 가해자 어느 누구도 자기의 행위가 여자에게 어느 만큼의 고통을 준 것인지 통 모른다. 영화에서도 은아의 외상이 전치 4주일 뿐이라는 것이 핵심인데 외상이 아니라 내상, 즉 영혼상이라는 것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가해자들의 부모, 검사, 판사, 변호사, 선생님 모든 어른들이 죄의식을 심어주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가해자들을 목격했기 때문에, 굳이 청소년 성범죄를 꺼내든 것이기도 하고?
청소년 성범죄를 이야기 하고자 한 이유는 성폭행 피해자가 됐을 때 어른에 비해 아이들의 딜레마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성인이면 대부분 극복한다. 그러나 성의 첫 경험이 폭행이라면 피해자의 피해는 어느 때보다도 큰 것 같다. 가해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때 바로 잡지 못하면 위험도가 더 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미성년 가해자들을 잘 가이드하고 피해자들을 힐링하는 시스템이 전무하다.
- 미성년자에 대한 강도높은 처벌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보여주는데 사실 논란이 많은 사안이기는 하다. 어쨌든 오늘날의 소년원 시스템은 범죄의 예방, 재발방지에는 큰 효과가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소년원 가는 나이가 만 18세다. 그러나 가해자가 만 18세가 아닌 경우도 꽤 많다. 아이들은 몸은 어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수 있다. 살인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기 때문에 보호한다? 특히 초범인 경우는 집행유예이거나 기소유예에서 그치기 되는데, 범법자는 아직 어리니 보호받는데 피해자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안타까웠다.
- 성폭행이 말씀하신대로 내상의 문제인데 외상 전치4주로 풀어버리는 법정신도 인상깊었다.
전치 4주 밖에 안나와 가해자들을 강도높게 처벌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 상황에서 물고 때리고 발로 차고 했어야 했나. 그러면 더 맞는데. 판례나 이런 것을 정리해보면 미국에서는 성폭행 피해자들을 서바이버, 즉 생존자라고 표현한다. 은아는 생존해서 온 것인다. 그런데 우리는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외형적으로만 측정해버리니까. 판사도 그 기준을 따라야 하는데 없다. 지금 검사와 판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기준들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시급하다. 또 '도가니'에서 잘 나타났는데 형사들의 경우 성폭행 가해자들을 집요하게 쫓을 수 없는 것이 친고죄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압박하게 되고, 거기서 피해자가 굴복해버리면 결국 형사들도 처벌할 수가 없다.
‘돈 크라이 마미’는 22일 개봉 이후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했다. 주말에는 ‘늑대소년’에 뒤쳐졌지만 26일에는 다시 ‘브레이킹던part2’에 이어 전체 2위, 한국영화 중에서는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그만큼 오늘날 성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높다.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지만 해결은 더디기 때문일까.
성폭행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더러 있었지만, 이 영화만큼 피해자의 감정선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 영화는 드물다. 허술한 만듦새에도 관객들이 공감하고 분노한다? 그것이 이 영화를 봐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김용한 감독. 사진 = 유진형 기자 zolong@mydaily.co.kr]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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