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올해는 한국 영화사에 기억에 남을 한 해가 될 것이다. 이례적으로 한 해에 두 편의 천만영화가 탄생했다.
여름 성수기에 개봉한 영화 '도둑들'은 기존 흥행 1위 '괴물'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뒤이어 추석 시장을 공략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가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 해에 두 편의 천만영화 탄생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지난 20일을 기점으로 올해 한국영화 누적관객 수가 1억 명에 도달했다고 발표했다. 그야말로 한국영화 전성시대다.
지난해 말 톰 크루즈 주연의 '미션임파서블4'가 극장가를 지배했던 것은 이제 옛 일. 이후 외화는 한국 영화시장에서 통 힘을 못 썼다. 반면 한국영화는 2012년의 시작을 기다렸단 듯이 올초부터 흥행작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부러진 화살'(344만)과 '댄싱퀸'(404만),'범죄와의 전쟁'(469만) 등 설 극장가를 겨냥한 작품들이 줄줄이 장기흥행에 성공하면서 한국영화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이중 '범죄와의 전쟁'과 '댄싱퀸'은 4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성공했다.
뒤이어 '화차'(243만)가 소소한 성공을 거둔 것에 이어 '건축학개론'(411만)이 빵 터졌다. 첫사랑을 소재로 한 '건축학개론'은 멜로 영화 흥행사를 새롭게 썼다. 로맨틱 코미디 '내 아내의 모든 것'(459만)도 쉴새 없이 관객동원에 바빴다. 여름 극장가로 가보면 '연가시'(451만)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62만)가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것에 이어 '도둑들'(1298만)은 올해 첫 천만 흥행작에 등극해 르네상스의 정점을 찍었다.
'도둑들'의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에 추석극장가를 공략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1209만, 상영중)가 심상치 않은 추세로 관객을 동원, 끝내 또 하나의 천만영화가 탄생했다. 여기가 끝은 아니었다. 겨울에는 '늑대소년'(614만, 상영중)이 남아있었던 것. '건축학개론'의 기록까지 갈아치우며 멜로 영화의 흥행사는 한 해에 두 번 바뀌었다.
수치로만 보면 어느 해보다 화려한 한국영화의 전성시대다. 2006년 정점을 찍고 줄곧 내리막길을 걷다 6년 만에 찾아온 호황 뒤에는 많은 문제점이 산적해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거론되는 것은 '양극화' 문제다.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아 비로소 국내에서 제대로 조명받기 시작한 김기덕 감독은 상을 받고 온 날부터 줄곧 멀티플렉스를 향해 "양심껏 하라"는 호통을 쳤다.
대기업 수직계열화가 고착된 한국의 멀티플렉스 극장에는 해당 극장과 이해관계가 있는 배급사가 배급하는 영화들 만이 살아남는 다는 것이 그 지적의 요점이다. 퐁당퐁당으로 불리는 교차상영으로 '도둑들'과 '광해', 두 천만영화가 탄생하는 사이 작은 영화는 그 존재감을 내보이기도 전에 극장 밖으로 쫓겨나고 만 것이다. 실제로 민병훈 감독의 '터치'는 교차상영의 희생양이 돼 개봉 일주일 만에 자체적으로 막을 내렸다.
민병훈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앞으로 상업영화 안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작은영화의 배우들도 "기대도 안 했지만 해도해도 너무한 처사"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는 이런 대기업의 독과점에 대한 실질적 규제가 없다는 것에 있다.
투자와 배급, 상영에 방송까지도 수직계열화된 사례가 한국 외에는 전무한데 이를 규제하는 국가적 제도가 없다는 것은 저예산 영화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시스템 적인 문제 외에도 영화계 안팎의 사람들이 영화를 대하는 인식 역시도 아직 갈길이 멀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한국영화와 외화, 양분화 시켜놓고 한국영화의 승리라며 환호하는 이들의 뒤통수를 단단히 때린 이는 바로 저예산 영화 '부러진 화살'로 흥행에 성공하고, 하반기에는 '남영동 1985'이라는 또 다른 화제작을 들고 등장한 정지영 감독이다.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70%라고 신나해서는 안 된다. 미국 영화가 미국에서 시장점유율 99%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미국 사람들이 자기 나라 영화 밖에 안 본다. 아니 못 본다. 그런 삶이 행복한 것일까? 풍요로운 것일까?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사람이 한국영화만 본다? 불행한 일이다. 일본, 남미, 아프리카, 유럽의 영화도 보면서 그들의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는 삶이 풍부한 삶이다. 한국영화의 수치적 성과는 경제적인 성과일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양하고 풍요로운 문화의 향유다. 그런 측면에서는 오늘의 성공은 결코 바람직 하지 않다."
정지영 감독은 물론,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도 단단한 돌직구를 날렸다.
"지금 한국영화 내부의 문제가 뭘까? 오늘의 성취가 내부적인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성취됐다는 점이다. 양극화 문제나 대기업의 수직계열화 문제, 독과점 어느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성공했기에 '지금의 구조가 좋은 구조다'라는 착각이 들 수도 있다. 상당히 위험하다. 대기업에 비유해보자. 대기업이 사상최대치의 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제품의 질을 높여 성취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잘라내 인건비를 절약해서 거둔 성적이라면, 최대 수익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대기업들이 천만 흥행하려고 어떤 짓을 했는지는 잘 알지 않나. 거기서 1등 하면 뭐하나."
[영화 '도둑들'과 '광해, 왕이 된 남자' 포스터. 사진 = 쇼박스,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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