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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전형진 기자] 종영한 SBS 드라마 '다섯 손가락'(극본 김순옥 연출 김지운)은 천재 피아니스트 유지호(주지훈)와 계모인줄 알았던 그의 친엄마 채영랑(채시라)의 이야기다. 놓고 보면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그 속에는 이복형제의 대결, 기업의 경영권 다툼, 로맨스, 모성애 등 다양한 장르가 버무러져 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배우들의 대사와 김순옥 작가 특유의 빠른 전개 등이 강점이긴 하지만 이 작품을 배우 주지훈이 선택했을 때는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들과 다른 빠른 호흡의 이 작품을 주지훈이 어떻게 소화해낼지 우려됐다.
다행히도 주지훈은 유지호 캐릭터를 잘 구현해냈다. 긴박하게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주지훈은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채시라와 함께 주연 배우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방송 초반 영랑에게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던 지호는 영랑의 실체를 알게 된 후에는 그와 대결을 펼치며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변신했다. 5년만의 안방극장 복귀로 합격점이었다.
그렇다면 30부작의 드라마 속에서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겪었던 주지훈은 어떤 생각을 갖고 연기했을까.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주지훈을 만나 '다섯 손가락'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주지훈과 나눈 일문일답]
-유지호 역할이 힘들었을 것 같다. 매 회마다 굉장히 많은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했고.
역할이 많이 힘들었다. 크게 나눴을 때 모성애, 피아노, 기업경쟁인데 전개가 아주 빨랐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다. 아마 시청자들은 전개가 빨라 재밌었을 것이다. 연기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힘들었지만.(웃음) 끝나고 나니 후폭풍이 있는 것 같다. 마지막에 지호는 엄마가 죽는 것도 모르면서 끝나지 않나. 가끔 집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으면 저절로 생각이 난다. 마음이 안 좋다.
-지호는 영랑이 처음에 친엄마라는 걸 모르고 연기했나?
연기가 여러 개가 있는데 배우마다 스타일이 다 다르다. 어떤 배우는 끝을 알아야 연기를 할 수 있다고 하고 어떤 배우는 결말을 잊고 연기하려 한다. 개인적으로 작가에게 전화해서 이런 걸 묻는 스타일이 아니다. 친엄마라는 건 배우들끼리는 모르고 연기했다. 게다가 모든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의견에 따라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또 이야기 전개도 워낙 빨라서 다음 회가 예측이 안됐다.
-예를 들면 음악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기업경영 다툼으로 이야기가 옮겨가기도 했다.
나는 디테일을 찾는 작업을 하는 배우다. 빠르게 옮겨가는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나는 한 회 사건이 20개가 터지면 그 안에 있는 감정은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그 상황 고조를 다 나눴다. '잽 잽 스트레스트 훅'을 다 따로 줬다. 연기를 감성만 가지고 할 수는 없는데 기술적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
-극중에 유지호가 우는 장면이 굉장히 많았다. 그 부분도 다 고조를 나눴나?
눈물 신도 고조에 많이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대본에 주인공 세 명이 오열하는 신이 있고 또 차를 타고 가면서 지호 혼자 우는 신이 있다. 대본에는 둘 다 오열이라고만 나와 있는데 둘 다 펑펑 우는 게 관객들은 더 슬플지 모르겠지만 배우들에게는 가짜 같다. 연기하는 사람이 가짜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래서 항상 몇 신마다 많으면 세 개 적으면 두 개 정도의 안을 가지고 감독님을 찾아간다. 그러면 감독님이 네가 원하는 걸로 하라고 한다.
정말 대단한 게 한 신도 안 놓는다(감정을 품고 간다). 그냥 지나가는 신도 있고 풀샷으로 멀리 잡는 신도 있는데 정말 한 신도 안 놓아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채시라 선배의 연기 스타일인 것 같다. 나는 보고 '우와' 그랬다. 어떻게 한 신도 안 놓고 저렇게 할까 싶었다. 대단하다.
-극중 러브라인을 형성하던 진세연과의 호흡은 어땠나?
진세연 씨는 극중 홍다미 역할과 정말 잘 어울렸다. 크게 어려운 건 없었는데…. 이 친구(진세연)가 키스를 안 해봤다고 해서 할 줄 모르는 거다. 대본에는 프렌치 키스라고 나와 있는데 실제로 프렌치 키스를 할 순 없지 않나. 어느 정도 요령이 필요한데 이 친구가 해봤어야 요령이 있는거다. 세연 씨는 가만히 있는데 나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고. 결국 나만 해버리는 것처럼 나왔다. 현장에서 감독님이 '경찰 불러' 이러더라.(웃음)
-팬들은 애정 신이 적어 아쉬워하더라.
애정 신은 많이 안 해봤으니까 있었으면 어떨까 싶었는데. 두 가지 갈래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어쩌면 (지호가 다미에게) 기댈 수 있으니까 좋기도 하고 또 기댔는데 나중에는 갈라지니까 더 힘들 수도 있고 (극중 지호와 다미는 서로 사랑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헤어져야 했다). 대본을 보면서 많이 쪼개서 생각하는 편이다.
-실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면 어떤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른 친구가 있었는데 정말 사랑스럽고 순수하고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까 나는 이해가 안됐다.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저러지 않았으면' 하면서 이해가 안 되는 거다. 그렇다고 내 성격이 '마음에 안 드니까 바꿔' 이런 스타일도 아니고. 나중에는 그런 것 때문에 사랑하는데도 헤어지게 되더라.
남자든 여자든 자기 일을 확실히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 같은 경우는 배우가 직업이라 일이 갑자기 생기는 때가 많다. 다른 사람들은 갑자기 일이 생겨 약속을 취소하면 '너무 미안해' 그러는데 나는 '내가 일부러 그러나? 일 때문인데 이게 나쁜 건가?' 싶다. 그래서 친구가 몇 명 없나?(웃음)
-팬들이 좋아하는 본인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전형적이지 않은 데서 오는 것 같다. 솔직한 편인데 그런 부분을 존중해 주는 것 같다. 팬들과 소통할 때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한다. 팬들이 집에 찾아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는데 내가 오지 말라고 그랬다. 연기자는 일상을 살아야 연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팬들이 집 밖에 있으면 물 하나 사러 가기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나를 놔두라고 한다. 팬들도 일정부분 그런 걸 존중해주는 것 같다.
-'다섯 손가락'을 비롯해 영화도 그렇고 군 제대 후 복귀 작품들이 큰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아쉽지만 어쩌겠나. 아직 내가 대배우도 아니고. 나 혼자 뭘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한다. 나는 상대배우나 소품, 의상에도 도움을 많이 받으니까. 나 혼자로도 될 수 있는 배우가 되도록 열심히 할 뿐이다. 특히 올해는 나이도 앞자리가 바뀌면서 어려워진 것도 있다. 예전에는 감독님들이 쉽게 욕을 했는데 지금은 '지훈아,' 이렇게 한다. 한편으로 기분은 좋지만 내가 스스로 책임져야 될 일이 많아지니까 어깨가 무거워진 것 같다.
[주지훈.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전형진 기자 hjjeon@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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