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원주 동부는 지난해 44승으로 정규시즌 역대 최다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챔피언결정전서 안양 KGC인삼공사의 패기에 주저앉았지만, 2011-2012시즌의 또 다른 승자였다. 불과 한 시즌이 지난 현재 그들의 현실은 참혹하다. 2라운드를 마친 동부의 성적은 4승 14패. 대추락이다. 강동희 감독은 2라운드를 마친 뒤 “주전 휴식? 최강전서 조직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라고 했다.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
▲ “내가 안이하게 준비했다, 꼼꼼하게 훈련시켰어야 했다”
올 시즌 동부의 참사는 복합적인 결과다. 근본적으로는 전통적으로 주전의존도가 높은 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한 게 원인이다. 이광재, 윤호영을 길러내며 리빌딩을 했으나 여전히 주전-백업 격차가 크다. 팀의 중심이 어렵게 젊은 선수 위주로 옮겨졌으나 이광재가 시즌 초반 부상에 시달렸고, 윤호영은 군입대했다. 김주성은 확실히 예전과 같은 기량은 아니다. 용병 선발도 유독 진통이 심했다. 약한 고리를 보이자 쉽게 무너졌다. 임기응변에 대처하는 힘이 약했다.
강동희 감독은 4일 모비스와의 프로-아마농구 최강전을 앞두고 “동부는 수년간 높이의 팀이었다. 윤호영과 벤슨의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 올 시즌 공수의 축이 바뀌었다.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거기서 파생되는 공격만 준비했다”라며 “팀 공수변화에 대해서 세밀하게 준비하지 못했다. 예습과 복습을 제대로 안 한 것이다. 좀 더 꼼꼼하게 훈련시켰어야 했다”라고 자책했다.
정규시즌 MVP이자 공수의 핵심 윤호영이 군입대했다. 로드 벤슨도 떠났다. 높이의 축이 이승준으로 바뀌었다. 그는 1대1 수비는 능하지만, 팀 수비엔 약점이 있다. 전성기를 지나고 있는 김주성 변수도 계산하지 못했다. 단순히 주축 선수 몇 명 바뀌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바뀐 선수들을 무작정 끼워 맞추기만 하려고 했다는 게 강 감독의 자책이다. 강 감독은 깊은 한숨을 쉬며 실토했다. “내가 안이하게 준비했다.”
동부 농구의 근간인 골밑이 흔들린 가운데 부상자도 속출했다. 박지현과 이광재는 이제서야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용병도 부상과 기량 미달로 계속 교체됐다. 줄리안 센슬리가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리처드 로비가 합류한 상황. 센슬리가 복귀하면 빅터 토마스가 퇴출된다. 지난해와 선수구성의 안정감이 하늘과 땅 차이다. 강 감독은 “외곽에서 풀어줄 선수가 부족하다. 식스맨도 강하게 키우지 못했다”라고 했다. 시스템 부재와 준비 부족 속 팀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 최강전은 동부의 힐링캠프
강 감독은 한양대와의 최강전 1회전서 김주성을 뺀 나머지 주력 선수를 모두 기용했다. 조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 모비스와의 8강전서는 김주성도 기용했다. 이승준을 중심에 둔 뒤 김주성을 26분, 김봉수를 백업으로 10분 정도 기용했다. 여기에 박지현과 이광재가 이끄는 백코트의 컨디션도 살아났다. 이승준과 물과 기름처럼 겉돌지 않았다.
이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갔다. 특히 이승준이 무리하게 공을 오래 소유하는 모습이 많이 줄어들었다. 이승준은 19점 12리바운드를 기록했고, 3점슛도 12개 시도 중 6차례나 들어갔다. 박지현도 어시스트를 8개나 기록할 정도로 팀 플레이가 잘 됐다. 상대의 실책도 속공으로 착실히 연결했다. 더 이상 골밑과 외곽이 따로 놀지 않았다. 서서히 조직력이 촘촘해지고 있다.
이날 승리가 더 값진 이유가 있다. 상대가 올 정규시즌 선두에 올라있는데다 국내 선수들의 탄탄한 조직력이 용병들보다 더 돋보이는 모비스라는 것.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비스는 조직적인 단단함은 동부보다 한 수위이지만, 높이에선 부담이 있다. 조직적인 플레이를 되찾은 동부가 높이 이점이 자연스럽게 부각됐고, 백보드를 지배하면서 승리를 따냈다. 최악이었던 팀 분위기가 최강전 2연승 및 준결승전 진출로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물론 동부는 양동근이 빠진 모비스를 이긴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즌 중반 이후 센슬리가 돌아온 뒤엔 기존 선수들과의 호흡도 다시 맞춰야 한다. 그래도 강 감독은 모비스를 꺾은 뒤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게 됐다. 김주성의 컨디션만 살아나면 최강전 우승도 노려볼 만 하다”라고 했다. 후회와 반성에 젖은 강 감독의 얼굴에 무언가 확신과 계산이 선 듯했다. 동부에 이번 최강전이 시즌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힐링 무대가 된 건 확실해 보인다.
[강동희 감독(위), 김주성과 이승준(아래).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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