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이데일리 = 배선영 기자] 연말 최대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 '타워'가 마침내 막을 올렸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벌어진 고층빌딩 타워스카이 붕괴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시간적 배경에 맞춰 24일 전야 개봉됐다. '7광구' 김지훈 감독이 심기일전하여 선보인 이 작품은 전작에서의 혹평을 의식한 듯 CG에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그러나 스토리 면에서는 허점이 많이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70년대작 '타워링'과 줄거리가 거의 유사한데, 오히려 30여년 전 작품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준다.
'타워'의 기본적인 줄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화려한 파티가 열린 고층빌딩이 화재사건으로 무너지면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사투. 타워 스카이라는 이름의 고층빌딩이 하늘 끝까지 닿고 싶어하는, 그러나 책임은 질 줄 모르는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을 상징한다는 점과 이 건물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갈등이 '타워링'과 상당부분 닮아있다.
도시인의 무분별한 욕망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타워링'은 주인공인 건축가 로버트(폴 뉴먼)가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귀향을 꿈꾸고, 연인 수잔(페이 더너웨이)와 이로 인해 갈등을 빚는다는 디테일한 설정으로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반면 '타워' 속 딸 하나로 억지로 이어진 듯한 대호(김상경)와 윤희(손예진) 사이 밋밋한 에피소드는 영 몰입이 안 된다. 각 인물의 성격에 당위성을 부여하지 못하고, 주방에서부터 선악구도로만 몰아세운 구식 스타일은 오늘날 관객들의 입맛에도 맞지 않은 느낌이다.
'타이타닉'에서는 손만 잡는 것으로도 찡한 감동을 자아낸 노년의 커플 에피소드는 어떠한가. 수트를 빌려입으면서 부잣집 마나님에게 사기를 치려다 죽음의 문턱에서 사랑에 빠져버린 '타워링'의 그것이 가진 함축적 의미는 사랑 고백 제대로 못해 왜 늦느냐는 뜬금없는 호통으로만 설명되는 '타워'의 그것과 너무나 비교가 된다. 오히려 예고편 속 "정여사, 미안하오"가 더 감동적이다.
악역도 아쉬운 것은 마찬가지. '타워링'에는 부품값을 줄이려 규격미달의 전기배선을 사용한 사위와 암묵적으로 이를 용인해 결국 많은 이들을 재앙에 빠트린 장인, 그 사이 딸 등 세 인물이 각기 자본주의의 끝없는 이기적 성질과 이를 묵인하는 정부, 그 사이에서 상처받는 이들을 상징하며 울림을 전했다.
이처럼 '타워'는 여러모로 70년대 할리우드에서 가능한 이야기를 2012년 한국에서 풀어놓지 못했다.
우리에게도 스티븐 맥퀸, 폴 뉴먼 못지 않은 설경구, 김상경이라는 배우가 있으며, 페이 더너웨이 이상의 매력을 지닌 손예진이 있는데, 이런 배우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타워'는 화려한 CG가 관객의 가슴을 울릴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기억되리라.
['타워' 스틸. 사진=영화인 제공]
배선영 기자 sypova@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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