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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중학생인 어린 배우가 성폭행 당하는 연기를 했다. 카메라는 어린 배우의 얼굴만 잡고 있을 뿐 구체적인 묘사를 하진 않았지만, 공포에 떨고 있는 어린 배우의 얼굴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끔찍한 상상력을 극대화시켰다. 그 장면이 나왔을 때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극본 문희정 연출 이재동 박재범)를 놓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아동 성폭행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보듬는 과정을 그리기 위해 불가피한 장면이었을 것이라고 합리화했다. 그리고 결말까지 참고 기다렸다. 스무 살을 겨우 넘긴 배우가 연쇄 살인마가 되어 이유도 알 수 없는 살인을 일삼았지만, '뭔가 치유의 과정이 남아 있겠지' 하며 '보고싶다'를 끝까지 믿었다.
그러나 없었다. '보고싶다'는 아동 성폭행으로 시작해 살인과 살인의 반복으로 이어졌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모두가 화해해버린 최악의 드라마였다. 그리고 문희정 작가는 이수연(윤은혜, 아역 김소현)을 처절한 불행 속에 밀어 넣었다.
이수연은 어린 시절을 살인자의 딸로 살며 온갖 학대와 따돌림을 당했고, 겨우 첫사랑 한정우(박유천, 아역 여진구)를 만나 웃었지만, 한정우와 함께 납치돼 한정우가 보는 앞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게다가 한정우는 그런 자신을 놔두고 도망쳤다. 이때 받은 충격으로 이수연은 강형준(유승호, 아역 안도규)을 따라 다른 나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얻었는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믿었던 강형준이 살인마였단 걸 받아들여야 했고, 강현준이 꾸민 살인자의 누명까지 덮어써야 했다. 심지어 강형준이 이수연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런데 이수연은 다 용서했다. 자신을 14년 동안 기다렸다는 한정우를 용서하고 다시 사랑했다. 자신을 죽이려던 강형준도 이수연은 용서하려고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혹시 어쩌면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보고싶다' 제작진에게 수연의 상처가 회복되고 용서에 이르게 되는 과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는지 설득력 있는 전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보고싶다'가 상처의 치유를 그리기 위해서였다면, 틀렸다. 드라마는 어설프고 허술한 해피엔딩으로 매듭지어졌고, '보고싶다'를 떠올리면 여전히 이수연이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 맴돈다. 결국 '보고싶다'는 시청자에게 정신적 상처만 남겼다. 치유는 거짓말이었다.
[배우 윤은혜(위)와 여진구. 사진 = MBC 방송화면 캡처]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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