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인배의 두근두근 시네마]
2007년도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스페인 수작 공포영화 '오퍼나지-비밀의 계단'으로 명성을 얻은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더 임파서블(THE IMPOSSIBLE)'은 2004년 12월 26일 현지 시간 오전 7시 59분쯤 인도네시아 해저 40km 지점에서 규모 9.1 강도의 지진이 일어나면서 발생한 시속 800km, 높이 15m의 해일이 태국·인도네시아·스리랑카, 몰디브 등을 강타하여 단 10분 만에 5000명, 30분 만에 13만명, 총 사상자 30만명을 기록한 인류 최대의 쓰나미를 그린 작품이다.
그런 만큼 재난영화에서 익히 봐왔던 대형블록버스터의 스펙터클 비주얼과 영웅적인 주인공이 희생과 용기로 위험한 구조에 나서 극적 긴장과 재미를 주는 할리우드식 재난영화를 기대한다면 실망이 크다.
"2004년 12월 26일 이 기록적인 해일은 동남아시아 해변을 강타했고 수많은 가족들의 삶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이 영화는 그 가족들 중 한 가족의 실화이다"라는 오프닝의 자막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태국 카오락의 리조트로 크리스마스 휴일을 보내기 위해 떠났던 스페인인 벨론 가족이 겪은 실제 경험담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이 영화를 재난영화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외국으로 여행 간 사람들이 끔찍한 사건을 겪은 뒤에 인생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는 걸 영화로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의 연출의도처럼 CGI가 아닌 세트를 지어 완벽하게 재현한 10분간의 쓰나미 장면은 엄마 마리아와 큰아들 루카스의 눈을 통해 쓰나미를 각인시키는데 그런 만큼 실제 그들과 함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사실적이라 소름이 끼친다.
특히 살점이 떨어져 나가 너덜거리는 마리아의 끔찍한 다리 부상과 폐허가 된 참혹한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비극적인 실화가 남긴 고통과 상처를 절절하게 느끼게 해 준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거대한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은 물론, 쓰나미에 휩쓸려 흩어진 한 가족이 서로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과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불가능을 기적으로 바꾸는 과정을 통해 한 치의 과장 없이 휴머니티를 부각시키는데 있다.
마치 쓰나미가 오는 전조음처럼 들리는 비행기의 굉음과 망망대해가 펼쳐진 하늘을 비행하는 베넷 가족이 탑승한 비행기의 근접 샷으로 시작되고 끝이 나는 이 영화는 쓰나미를 당하기 전,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의 행복한 모습과 쓰나미를 당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가족의 불안한 모습을 통해 자연재해에 대한 공포와 평생 안고 살아야하는 후유증에 대한 고통을 상기시킨다.
의사인 마리아(나오미 와츠)와 그녀의 남편 헨리(이완 맥그리거)는 크리스마스 휴일을 맞아 세 아들 루카스(톰 홀랜드), 토마스(사무엘 조슬린), 사이먼(오클리 펜더가스트)과 함께 태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아름다운 해변이 보이는 평화로운 리조트에서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보내지만 크리스마스 다음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쓰나미가 그들을 덮친다.
단 10분 만에 모든 것이 거대한 물살에 휩쓸려가고, 그 속에서 헨리와 마리아 그리고 세 아들은 행방을 모른 채 흩어진다. 30분 만에 다시 들이닥친 쓰나미로 또다시 회오리치는 물살에 휩쓸렸던 마리아는 기적적으로 큰 아들 루카스와 합류한다.
그러나 복부와 다리에 큰 상처를 입은 마리아는 극심한 육체적인 고통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루카스의 도움을 받게 되고 그 와중에 쓰나미가 남기고 간 폐허 속에서 부모를 잃은 꼬마 다니엘을 구조한다.
가까스로 원주민들에 의해 구조된 마리아는 깊은 상처 때문에 생사를 건 수술을 감행하게 되고 큰아들 루카스는 마리아 옆을 지키면서 재난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찾아준다.
'더 임파서블'은 베넷 가족이 쓰나미로 흩어져 갖은 고생 끝에 재회하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단순한 이야기 속에 내재된 리얼리티가 주는 감동은 아주 크다.
의사인 마리아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살아있는 다른 생존자를 구하고자 노력하고 그렇게 구해준 꼬마 다니엘은 아버지와 재회한다. 아들 루카스는 그것을 목격하고 가족 찾아주기를 실행하면서 사랑이 얼마나 큰 기적을 만드는지 알게 된다.
어떻게 보면 영화적으로 아주 사소한 순간이지만 그러한 사소한 순간을 통해 희생과 협동의 휴머니즘을 각인시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장점이다.
특히 가족의 생사를 몰라 애태우는 헨리에게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을 기꺼이 빌려주고 자동차를 잠시 정차시키는 등, 남을 위한 작은 배려와 사랑이 모여 기적을 이룬다는 교훈이 자연스럽게 확산되면서 감동으로 부각된다.
마리아는 아들 루카스가 두려워할까봐 용감한 척 하지만 깊은 상처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고 유약해진다. 평소 동생들을 잘 돌보지 않고 엄마에게 자주 대들었던 루카스는 급류 속에서 엄마와 합류하면서 다시는 엄마한테 대들지 않겠다고 맹세를 한다. 그런 만큼 아들 루카스는 생사의 문턱에선 어머니 마리아를 끝까지 보호하면서 변화하고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한다.
마리아와 루카스가 급류에 휩쓸리고 구조될 때까지 두 사람의 시선으로 진행되던 영화는 헨리가 마리아와 루카스를 찾는 장면부터 다른 생존자들이 등장하고 헨리 가족들을 도와주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감동도 확대되어 간다.
자연재해처럼 불가항력 같은 고통이나 고난 앞에서 인간이란 존재는 늘 미미하지만 재난 이후, 피부색과 국적,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한 가족이 되어 간다. 그러한 재난 이후의 상황을 통해 서로 협동하고 서로 변화하며 치유하는 성장의 과정과 진정한 휴머니티를 보여주는 이 영화의 꽃은 큰 아들 루카스 역의 톰 홀랜드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무대에서 연기력을 입증한 톰 홀랜드는 첫 영화 데뷔에도 불구하고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영화의 중심에 서서 쓰나미를 겪으며 성장하는 루카스의 내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나오미 왓츠는 육체적인 고통 앞에서도 강인한 모성애를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자꾸 유약 해져가는 마리아의 내면을 각인시켜 아카데미 영화제 여우주연상후보로 선정되었다.
'더 임파서블'은 절절한 가족애로 눈물을 흘리게 하는 두근두근 시네마이다.
<고인배 영화평론가 paulgo@paran.com>
[영화 '더 임파서블' 스틸컷.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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