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NBA
[마이데일리 = 청주 김진성 기자] 유쾌한 반란이다.
춘천 우리은행이 2006년 겨울리그 이후 7년만에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21일 청주 KB와의 원정경기서 승리하면서 정상의 감격을 맛봤다. 한빛은행 시절이었던 1999년 겨울리그서 첫 우승을 차지한 뒤 통산 6번째 우승이다. 지난 네 시즌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던 팀이 정상에 우뚝 선 것이다.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박성배 코치 영입, 지난 여름의 맹훈련, 젊은 선수들의 각성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우리은행의 정규시즌 우승은 그야말로 감동 드라마다.
▲ 위성우 감독 영입, 훈련 또 훈련
우리은행은 지난 2011-2012시즌 4년 연속 최하위를 차지했다. 김광은 전임 감독이 시즌 초반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난 뒤 조혜진 전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무난하게 잔여 시즌을 치렀으나 도약이 필요했다. 우리은행 수뇌부는 결단을 내렸다. 신한은행의 통합 6연패를 이끈 임달식 감독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위성우-전주원 코치를 각각 감독과 코치로 영입하는 강수를 둔 것. 이어 숭의여고에서 여고선수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는 박성배 코치를 영입해 코칭스태프 조합에 변화를 줬다.
선수단 전력은 오히려 떨어졌다. 고아라가 FA 자격을 얻어 용인 삼성생명으로 떠났다. 위 감독은 혹독한 훈련을 지휘했다. 체력 훈련과 기술 훈련을 병행했다. 올 시즌 히트상품인 특유의 풀코트 프레스 수비도 이때 만들어졌다. 훈련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질이었다. 위 감독이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훈련을 시켰다. 장위동 우리은행 숙소는 지난 5월부터 여름내내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식당에서 밥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퇴근을 하지 못해 아우성이었다. 밥 시간도 잊고 훈련에 매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부상으로 낙오하는 선수 하나 없었다.
▲ 개막전부터 반란… 우리은행의 질주가 시작됐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10월 12일 개막전을 치렀다. 공식개막전. 상대는 구리 KDB생명. 예상을 뒤엎고 승리했다. 시종일관 풀코트 프레스로 KDB생명의 숨통을 끊었고, 끈끈한 3-2지역방어로 실점을 최소화했다. 공격에선 속공과 함께 주전들의 자신감이 한결 배가돼 있었다. 그렇게 우리은행은 개막전부터 질주를 시작했다.
처음엔 그러다 말겠지 했다. 아니었다. 신한은행, KB등 강호들을 연이어 잡아내며 선두로 치고 나왔다. 3라운드 들어 외국인 선수 루스 라일리가 합류할 예정이었으나 봉사활동을 이유로 합류가 불발됐고, WNBA 출신 티나 톰슨이 전격 합류했다. 전화위복이었다. 확실히 되는 시즌이었다. 톰슨은 과거 KB와 금호생명에서 WKBL을 경험해봤다. 적응이 따로 필요 없었다. 우리은행 어린 선수들을 리드하며 승부처에서 연이어 득점을 만들었다. 그녀를 막을 선수는 없었다.
국내 선수들도 조연이 아니었다. 주장 임영희는 34세의 나이에 기량이 만개했다. 특유의 원 드리블 이후 빠르게 솟구쳐 올라가서 쏘는 중거리슛은 전매특허가 됐다. 티나와 임영희가 득점을 책임졌고, 박혜진과 이승아는 왕성한 체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수비와 속공을 선보였다. 이들은 삼천포여고와 인성여고에서 우승을 해봤던 DNA를 되살렸다. 만년 유망주 양지희와 배혜윤도 골밑에서 한결 자신감이 생겼다. 티나에게 몰린 수비수를 적절히 활용해 쉽게 농구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들 5~6명의 주전들은 거의 매경기 풀타임을 소화하며 강한 우리은행을 만들었다.
▲ 마지막 고비… 기어코 넘어서며 우승 골인
고비는 시즌 막판에 찾아왔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첫 경기서 3대3 트레이드로 전력을 강화한 신한은행을 잡고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를 8에서 5로 줄였다. 이때부터 고비였다. 이후 우리은행은 시즌 첫 4연패에 빠졌다. 체력도 떨어졌고, 우승에 대한 부담감이 다가왔다. 지난 네 시즌 연속 최하위만 경험했던 우리은행. 승리의 맛을 이제 막 알아가던 선수들이었다. 상대를 알고 능수능란하게 경기를 운영했다기보다 패기와 자신감으로 경기를 해왔기에 주위의 ‘우승 운운’은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실제 임영희를 비롯한 대부분 선수가 그랬다고 고백했다.
쓰러지지 않았다. 위기는 기회였다. 티나 톰슨이 NBA 올스타 행사 참가 관계로 팀을 비운 상황. 우리은행은 국내 선수들을 위주로 초심으로 돌아갔다. 똘똘 뭉쳤다. 부담을 스스로 떨쳐냈다. 위성우 감독도 계속 선수들을 편안하게 해줬다. 15일 정규시즌 마지막 홈경기서 KDB생명을 대파하더니 21일 서동철 감독의 데뷔전을 치른 청주 KB을 잡아내면서 정규시즌 우승에 골인했다. 지난 네 시즌 연속 최하위 굴욕을 단번에 씻어낸 쾌거였다.
우리은행의 우승은 많은 걸 시사한다. 지난 4년간 바닥에 머무른 선수들의 기량과 오기가 한꺼번에 치솟은 결과였고, 초보 위성우 감독이 초보답지 않게 팀을 잘 이끈 결과였다. 그녀들은 지난 몇 년간 약자의 아이콘이었다. 그녀들은 ‘하면 된다’라는 평범한 진리를 코트에서 일깨워줬다. 지난 여름의 땀방울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해냈다. 열등생들이 우등생으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우리은행은 3월 15일 춘천에서 열리는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 선착했다. 정규시즌-챔피언결정전 통합 우승에 도전한다. 그녀들은 2006년 겨울리그 통합우승의 감격을 7년만에 다시 느끼고 싶어한다.
[우리은행 선수들(위,아래), 우리은행 벤치(가운데). 사진 = WKBL 제공]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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