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마이데일리 = 대만 타이중 김진성 기자] 승자는 누구였나.
한국과 대만의 5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 1라운드 B조 최종전. 0-2로 뒤지던 한국이 8회말 이대호의 1타점 적시타와 강정호의 역전 좌월 투런포로 3-2 역전승을 따냈다. 9회 등판한 오승환이 세이브를 따냈으나 진갑용과 하이파이브 뒤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세우는 세레모니를 하지 않았다. 이겨도 이기지 않은 경기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직전 경기서 네덜란드가 호주를 잡으면서 무조건 대만을 5점차 이상(상대 자책 3점 이상) 이겨야 했다. 3팀 이상 동률 시 TQB(득점/공격이닝)-(실점-수비이닝)의 합이 높은 팀에 높은 순위가 주어지는 대회 규정상 득점과 실점의 균형이 중요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1점차 승리를 하면서 대만과 네덜란드에 TQB에서 뒤지며 B조 3위를 차지했다. WBC 사상 첫 1라운드 탈락 충격을 맛봤다. 그 이후 현장 분위기는 어땠을까.
▲ ‘멘탈붕괴’ 한국, ‘찝찝한’ 대만
한국은 당연히 이겨도 이긴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경기 후 류중일 감독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인터뷰실에 나타나서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했다. 내 역량이 부족했다”고 고개를 떨궜다. 사진기자가 보내온 한국 덕아웃 풍경도 멘탈붕괴 그 자체였다. 이기긴 이겼으니 경기 후 하이파이브는 해야 할 터. 그렇게 슬퍼 보이는 하이파이브는 처음이었다. 그간 국제대회서 숱하게 8회 역전극을 했던 한국이었다. 이번 8회 역전극은 팥소 없는 찐빵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다.
대만은 한국에 패배했으나 사상 첫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으니 기뻐하지 않았을까. 경기 후 세창헝 감독은 “Mission Incomplete”라고 했다. 2라운드 진출과는 별개로 한국전 패배가 아쉬운 듯한 눈치다. 대만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09년 WBC,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등 최근 몇 년간 굵직한 국제대회서 한국을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홈에서 개최한 1라운드가 내심 한국을 잡고 조 1위로 2라운드로 갈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전패를 당하며 찝찝하게 2라운드 진출을 확정했다.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선수들 표정도 아주 밝지는 않았다.
▲ 승자는 대만 팬들?
이날 경기 전 현장에선 “경기 끝나고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2만명 수용 가능한 타이중 인터콘티넨탈구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경기 후 소요사태를 벌일 수도 있다는 우려였다. 실제 대만 모 신문에서 경기 전 한국을 때려부수겠다는 자극적인 포스터를 관중들에게 배포하면서 반한감정을 부채질했다. 야구가 국기인 대만. 팬들 역시 한국을 이기는 모습을 보고 싶어했다. 대만이 한국에 5점차 이상 패배해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할 경우 군중심리가 작용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대만이 역전패하면서 2라운드 진출 성공에도 조금은 실망하지 않았을까. 경기 후 별 다른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야외에 위치한 기자석의 한국 기자들 양 옆 좌석에 대만 팬들이 가득했으나 그들은 경기 후 질서정연하게 인터콘티넨탈구장을 빠져나갔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경찰병력도 있었다. 다만 일부 팬들은 경기 후 경기장 밖에서 대만의 2라운드 진출을 열렬하게 축하하는 퍼포먼스를 벌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와중에 대만 일부 매체는 팬들의 열광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가느라 분주했다. 경기를 치른 양국은 기뻐하지 못했으나 대만 팬들은 분명 축제의 하루였다.
▲ 아쉬움 진한 KBO 관계자들과 한국 기자들
KBO 관계자는 “샌프란시스코 갈 준비도 됐다”고 했다. 대표팀의 4강 혹은 준우승 그 이상의 신화를 뒷받침할 만반의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 그러나 현실은 1라운드 탈락. KBO 관계자는 부랴부랴 대표팀의 6일 비행기 편을 재조정했다. 도쿄로 예약해둔 표를 인천행으로 바꿔야 하는 KBO 관계자들의 얼굴에서 허탈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현장에서 경기를 관전한 구본능 총재 역시 아쉬움이 큰 표정이었다.
한국에서 타이중 현지에 취재를 하러 온 기자들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중립을 지켜야 하는 신분이기 전에 한국인이다. 한국의 1라운드 탈락 확정 직후 모두 굳은 얼굴로 기사 마감을 하는 모습이었다. 네덜란드전 패배 직후부터 TQB를 계산하느라 진이 빠진 기자들 입장에서도 한국의 1라운드 탈락은 허탈하기 짝이 없는 결과였다.
[표정이 굳은 한국선수들(위), 대만 팬들(아래). 사진 = 대만 타이중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댓글
[ 300자 이내 / 현재: 0자 ]
현재 총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